"학생이 돈 좀 빌려줄 수 없을까?"
- 귀를 의심했다. 방금 들은 동네 점빵(구멍가게의 사투리) 아줌마의 말이다. 아침에 집 앞 '우리수퍼'에서 눈 치우는 부삽을 하나 빌려다 돌려주러 가는 길이었다.
자기 집 앞의 눈은 자기가 치우라고 하는 서울시 조례(단, 이 조례는 위법 소지가 있다고 본다. (관련 포스팅:
자기 집 앞에 쌓인 눈은 자기가 치워라?)도 있다지만, 어쨌든 소복히 쌓인 눈에 설레던 남쪽나라 꼬꼬마는 이젠 옛말이다. 집 앞에 눈이 쌓인 채 얼어가고 있으면 집주인이 치우든 어쩌든 내 성질에 일단 치워놓지 않고는 못 배긴다. 아마 서울 오던 첫 해 겨울 반포동 사촌형 자취방네 집 앞에서 미끄러져 기절한 기억이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게다가 내일은 시험일이다. 새벽나절부터 나서서 신림에서 서초구 어디엔가 붙어있다는 서울고등학교까지 어떻게든 닿아야 하는데, 빙판에 미끄러지기는 싫었다.
같은 건물에 사는 (아마도 고시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은 단 한 명도 도와주지 않고 책가방을 챙겨 유유히 학원으로, 독서실로 내뺐다. 공부하러 가면서 뭐 저렇게 얼굴이며 옷매무새며 꾸미고 나가는지, 공부하러 나가는지 강남역에 놀러나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에 비례해 내 몰골이란 게, 낡은 패딩조끼에 츄리닝에, 장갑 끼고, 키보다 훨씬 짤막한 부삽(옛날에 연탄 아궁이 치우던 재삽 닮았다)을 들고 구부정하게 삽질하는 폼이, 관리인 내지는 꼭 어디 막노동판 인간처럼 보였나보다. (원룸 건물 주인은 땅부자이고 가끔 관리인이 왔다 간다.) 잠깐 눈 마주친 그녀의 눈빛에 동정과 오만이 반반쯤 섞인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래 귀족적이어갖고 백날천날 시험공부해서 고시 붙어봐야 서민들 고충을 우째 알겠노?" 하긴, 요즘 고시공부도 있는 집 손들은 사시를 보고, 없는 집 손들은 공시(7, 9급 공무원)를 본다 했다. 잠시 내 경제적 계급에 대한 자아성찰을 0.5초간 끝낸 후,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긴머리 휘날리고 모퉁이로 사라지는 3층 여학생 뒤통수 멀리에다 대고 감자를 한 방 먹여 준 뒤, 다시 부삽질을 계속했다.
그리하여 대충 집 앞에 쌓인 것만 치우고, 점빵에 삽 돌려주고 점심으로 때울 라면 하나 사려고 계산하는 그 자리에서 아줌마가 저런 소리를 하시는 것이다. 물론 지나가는 소리였다. "아니.... 저녁까지 돈 다른 데 넣어야 된다고, 저쪽에서는 돈 준다 했는데 참... 미치겠네. 허허허." 생각해보니 거의 말일, 집세 나가는 날인듯싶다. 얼마나 속으로 끙끙 앓으면 별로 면식도 없는 나한테 저럴까 싶다. 점빵 아저씨와는 얼굴이 익었지만 아줌마는 별로 본 일이 없는데도,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하듯 지나가는 아쉬운 소리를 한다. 그리고 그 너머 19인치 낡은 TV에서 나오는 뉴스에서는 지난 대통령 임기 동안 주가가 173%가 올랐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며 저게 어느 나라 얘긴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