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 발해를 꿈꾸며(연주 버전)





[발해를 꿈꾸며(instrumental)]
8th track of "SEOTAIJI AND BOYS III"



아마도 서태지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 가장 빼어난 트랙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없이 이 트랙을 들겠습니다. 몇 번 언급한 적 있지만 1994년 당시 대한민국에서 이만한 사운드를 뽑아낸 음반은 거의 없었겠지요. 팀 피어스의 유려한 어쿠스틱 기타와 케빈 스코트의 기타 테크니션이 어우러진 일렉트릭 기타사운드는 정말 정신을 쏙 빼놓습니다. LA의 콘웨이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따고, 또 그것을 믹싱하기 위해 밴쿠버까지 날아가는 등 서태지는 이 앨범을 위해 정말로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죠. 물론 서태지 자신이 뮤지션이면서도 - '교실 이데아'등의 곡에서 베이스 및 키보드는 서태지가 직접 세션을 담당했습니다 - 동시에 실력파 엔지니어이기도 했고 말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서태지의 재능은 하드코어보다는 일렉트로니카, 연주력보다는 사운드 만지는 실력에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매우 지독하리만치 고통스러운 노력과 근성의 결실이겠지요. 서태지를 흔히 천재라고 일컫지만 사실 서태지의 본질은 거의 외곬에 가까운 노력형 수재 스타일이라는 게 서빠질 15년동안 내린 결론입니다.(....)

분식집 식당 개 노릇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그 긴 시간동안 서태지에 대해 계속 알아가면서 몇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서태지는 타고난 천재가 아니며, 인간 이상의 노력을 하는 수재가 마침내 득도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그가 서태지와 아이들을 해체하고 은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창작의 고통" 운운했음을 떠올려봅시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그는 일종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나중에 발간된 이주노의 회고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죠.) 즉 서태지는 덕후 중에서도 본좌급 상덕후란 거죠.[...] 실제로 제가 느끼기엔 서태지의 정신세계 - 단, 그가 외부로 내보인 저작물들과 행동에 의한 것이라는 한계는 있음 - 와 음악세계는 마니아, 오타쿠의 경지마저 벗어나 무슨 구도의 길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 중압감은 가끔 사이키델릭한 느낌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기괴함을 즐기는 모습은 이너비리스너비부터 시작해서 그의 디스코그래피 곳곳에 잘 숨어 있습니다. 주로 공연실황 같은 곳에서 많이 나오지만, 정규 앨범에서도 ㄱ나니 같은 경우는 아예 대놓고 그런 얘기를 하고 있고... 그러니 서태지가 상업적이고 음악성이 없네 어쩌네 하는 건 정말 개소리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에게 영향을 준 다른 것들이 클리셰로 나타나는 경우는 있지만.

그런데 한편으로, 서태지에게는 그 대단한 경지의 기괴한 결과물을 사람들이 좀 알아 주었으면, 하는 일종의 외로움이나 자기과시욕구도 은근히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뭐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낄 만한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3집 앨범에 실린 이 '발해를 꿈꾸며' 연주 버전 트랙은 그런 의미에서 실린 게 아닐까 합니다. 한국 노래방은 싱글CD 들고가서 MR 끼워넣는 거 지원하는 시스템도 아닌데, 뭐하려고 MR트랙을 또 집어넣었을까... 생각건대 당시 열악하기 그지없던 한국의 사운드 사정에서 벌어놓은 돈 거의 다 까먹다시피하며 사운드에 투자했으니까, 그 결과물을 즐길 놈들은 즐겨봐라, 그리고 나 좀 알아주라. 뭐 이런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게 아닌지... 실제로 이 트랙은 원곡에 비해 믹싱상태가 좀 다른데, 단지 원곡에서 보컬채널만 제거한 것이 아니라 아예 각 기타의 사운드가 각각 따로 만져져있는 게 느껴집니다. 어쿠스틱도, 리프도, 애드립도 모두 훌륭하게 제 목소리를 내고 있지요. 자신의 노래를 좋아해주는 팬들 중에서라면 그의 음악세계에 한층 교감할 수 있는 사람도 분명 있을거야, 라는 희망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서태지 7집 당시 KBS의 77주년 콘서트 이름이 '교감'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디스코그라피 중에서도 이러한 교감과 소통을 노래하는 곡은 꾸준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6집 발매 이후에는 서태지가 객관적 완성도보다는 (물론 여전히 정말 까탈스럽게 저작물의 완성도에 목숨걸긴 하지만서도... 6집은 아예 밴드 데리고 새로 녹음해서 아예 콘서트 앨범에 끼워 새로 내놨음) 일단 기본적으로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한다'는 방침이 느껴지는데, 저같은 서태지빠는 오히려 그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는 코드들이 안 가려지고 많이 튀어나와서 좋습니다. 그런데 두뇌게임같은 면이 줄어드니 예전보다 좀 심심한 것도 사실이네요. 흐흐. (예컨대 전세계 덕후들을 열광시킨-_- David Lowe와 BBC의 일렉트로니카 카운트다운 코드는 서태지 7집 활동시절 신보인 watch out에서도 살짝 나타나며, 철도나 양철장난감 등 그런 이미지의 사용은 일본 음악계의 영향과 관계있는 서태지가 쓸 법한 코드들이라 하겠습니다.)


여튼 요약하자면 서태지의 음악세계는 지금은 여유와 관록, 그리고 자유가 느껴지고 아이들 시절에는 도전정신과 에너지, 치열함이 느껴졌지요. 그 강철같은 담금질 속에서도 가장 빛나는 사운드를 내는 트랙이 바로 이 3집의 8번트랙이 아닐까 싶네요. (서태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트랙을 꼽으라면 하여가와 Heffy end, 그리고 ㄱ나니를 꼽겠지만.)


* 저작권에 관하여 : 서태지는 자신의 창작물에 관련하여 굉장히 관리를 꼼꼼히 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재수의 패러디 '컴배콤' 사건에서 보듯 어설프게 상업적 이용을 했다가 소송사태 맞은 치들이 한둘이 아닌데 - 그런데 팬들이 비상업적 용도로 단지 즐기기 위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 건, 이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이용하라고 밝혔지요. 이는 서태지 자신이 저작권협회에 업무를 위탁하지 않고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S 법무법인은 저작권협회측의 위탁을 받는 것으로 압니다.)


balhae_mr.mp3

by 홍월영 | 2008/07/14 04:25 | 뇌내세척 | 트랙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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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오즈의 자유로운 정신 at 2008/07/28 10:09

제목 : 서태지 8집 앨범 나오기 하루 전날의 준비
내일 드디어 앨범이 나옵니다. 해외배송을 기다리려면 2주는 지나야겠고싸이에 배경음악을 질렀습니다. 내일이면 싸이를 하루종일 틀어놓고음악에 빠져들겠지요. 누구든지 제 싸이에 놀러오면 음악을 들으실 수 있을겁니다.근데 내 싸이주소가 뭐더라? cyworld그런 의미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 발해를 꿈꾸며(연주 버전)이라는 글을 올리신 홍월영님의 글을 트랙백합니다.서태지의 음악적 성과에 대해서 그가 늘 한두 발짝을 앞서기 때문에사람들이 이해를 못하고 뒤......more

Commented by 슈지 at 2008/07/14 06:50
어허, 이 곡 올리셨군요. 저도 컴백시즌 맞춰 곡 하나 올려봐야겠습니다.

1. 팀 피어스는 누노 베텐코트의 세션 중 하나이기도 하고 마이클 랜도우(서태지 4집,이승환 세션이기도 한)와 함께 세션 기타리스트의 양대 산맥으로도 유명한 분이죠. 정말 풍성하고 맛깔나는 톤 잘 뽑기로도 유명하구요.

2. 저는 개인적으로 서태지 세션들이 가장 돋보이는 앨범을 꼽아보자면 솔로 3집과 정규 3집을 꼽고 싶습니다. 정규 3집이야 팀 피어스, 케빈 스코트(전 커팅 크루), 존 피어스(현란한 슬랩의 베이스) , 데니 폰게이저(칼박으로 유명한 세션드러머) 등 세계적으로 이름이 장난아닌 세션진이고 솔로 3집은 확실히 Hide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드러내듯 KAZ(전 히데밴드 기타리스트), INA(도프 헤즈, 히데 with Spread Beaver의 믹싱 프로그래머 및 프로듀서),J(전 Luna Sea 베이시스트) 의 구성이지요. 실력있는 세션맨 기용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보는 입장인지라 확실히 실력 하나는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3.저 자신은 서태지 개인적인 프로듀서로의 능력도 상당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예전에 마돈나 인터뷰를 본 적 있었는데 신디사이저에 대해 정말 이것저것 잘 꿰고 있었는데다 세션맨들 고충도 잘 파악하고 있더군요. 서태지 홀로 다 했다는 솔로 1집의 Take Three 같은 곡을 본다면 반복과 풍성한 리듬 라인, Cut & Paste 필이 물씬 납니다. 나중에 솔로 3집서 Cut & Paste의 달인인 INA와 조우하게 된 것도 단순히 우연만은 아닌 듯 보이지요. 그전의 솔로 2집의 경우는 자신의 개인적 흥미와 트렌드에 맞춘 잠깐의 외도로 보입니다. 오히려 가장 이질적인 앨범이기도 하구요.

4.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서태지가 끼친 영향은 단순한 수준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의 음악 전반은 자신의 자의식을 잘 표현하고 있고, 신해철과 비교되는 입장인 패배자 심리들이 잘 드러나는 것도 재미있지요.과연 서태지같은 뮤지션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요? 그래서인지 그동안 봐온 면모 하나하나 모두 대단하게 느껴지는 만큼 더욱 안타깝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7/14 13:31
5집뿐만 아니라 사실 그 이전부터 서태지는 올라운드플레이어였지. 내 맘이야의 드럼질도 아마 서태지의 프로그래밍일거다. 교실 이데아, 내 맘이야 베이스도 자기가 직접 쳤고. 그나저나 신해철을 찝어낸 건 내 지인 중에서는 니가 처음이다. 덜덜덜. 난 이상하게 음악 궤적이 겹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말이지. 그러고보니 아이들 해체할 때 자기 악기처분을 몽땅 신해철 통해서 했다던가.
뭐랄까 15주년 한정반에 수록된 새 트랙들 들어보면서 좀 안타까움을 느꼈는데, 사운드 하나는 발군이었지만 다른 면에서는 너무 밋밋해서 전혀 긴장감이 안 느껴지더만. 서태지도 이제 기력이 다한 건지.... 내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다만 한편으로는 인간 정현철에게 내 귀 좋자고 수라도를 강요해서야 되겠느냐라는 생각도 들더라.
Commented by 우유차 at 2008/07/14 08:21
서빠질 15년, 코멘트에서 괜히 반가운 마음에 웃음이 나네요 ^^
'저지르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분 아니겠습니까. 그게 트렌드가 되는 걸 보고서 나중에야 '대단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팬 놀이도 그저 좋습니다. ^^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7/14 13:34
남들보다 반 발짝 앞서면 사람들이 모두 알겠지만, 한 두 발짝씩 앞서버리기 때문에 외려 과소평가되는 면이 많은 뮤지션이라고 생각됩니다. 활동 당시에는 외국 트렌드의 차용 논란 어쩌고 하다가 결국 두 시즌쯤 지나면 서태지는 잠수타고 있고 그 트렌드가 최신 유행코드로 도는 걸 보면서 씁쓰름하죠. 서태지의 진가는 혁명적인 진보에 있다고 생각되는데 최근 토스카 광고는 자기 입을 빌어 그런 코멘트가 나오니까 괜시리 반가워지더군요. (아 저새끼도 사람새끼였구나... 랄까)
Commented by Lani at 2008/07/28 17:12
TV CF 를 바라보면서 태지님도 사람이고 외로움을 느낀것이 아닐까 생각듭니다.
나를 지켜봐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 모습을 보고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노출하면서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접근해 봅니다.
이번 8집 모아이 에서도 태초의 소리, 출생 이전의 소리라는 멘트에서 저는 이상하게 "외로움" 이라는 단어가 자꾸 떠오르더군요. 어머니의 자궁안에서 어두운 공간안에서 어머니라는 존재의 심장소리가 유일한 친구인 태아.. 그리고 세상에 나오기전의 그 두려움..
주관적인 생각으로 이번 앨범은 외로움 이란 테마를 생각하며 들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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