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712.

○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자신의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좀 더 명확히 하자면 '자신들이 생각한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수많은 담론이 오고가는 것을 보며, 실은 그것이 어느 권위있는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수많은 오리지널들 중, 불특정 미디어를 통해 유통중인 열화카피본임을 알고서는 적잖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야기를 그들에게 하면 매우 화를 낸다. 그 중에서는 니가 뭔데 니가 뭐 그리 잘났는데 사람 무시하느냐- 가 제일 많이 들어 본 힐난이었다. 비난하는 자들의 자존심은 매우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뜻이다. 기실 내 눈에도 그들 개개인의 면모나 지적 수준을 보면 아주 멀쩡해 보인다.

그렇다면 남은 결론은 하나.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미디어를 통해 "먹기 좋게 잘 소화된" 생각들을 그냥 자기 입맛에 골라 먹고 걸쳤을 뿐이다. 과연 자본주의의 시대답다. 귀차니즘의 시류를 타고 담론조차도 상품이 된다. 그리고 과거의 나는 확실하게 그 '소비자들' 중 하나였다. 소위 '낚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다행히도 나는 요 2년 사이에 정보의 단계를 축약하는 법을 어께너머로 배우는 귀중한 경험을 했고, 이미 그런 단계를 마스터한 많은 사람들 또한 알게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그러한 교육을 아예 받지 못하였거나 혹은 교육받은 사람임에도 그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보화 시대의 프롤레타리아라고 누가 표현했던 것 같은데, 섬뜩하다. 아직도 내가 저 담론 속에 갇혀있었다면, 저 프레임 안에 노예로 남아있었다면 무슨 짓을 하고 다녔을지.

남의 입으로 씹어 준 밥풀떼기 침범벅 죽같은 정보보다는, 멋진 요리를 내놓을 수 있는 요리사가 되고 싶다. 진흙 속의 원석을 갈고닦아 세공하고 싶고, 그리하여 세상을 바로 보고 싶다. 나는 좀 더 자유롭고 싶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 초난강(쿠사나기 츠요시)은 그의 이름을 딴 후지TV의 심야프로 '초난강' 제1회의 대본을 몽땅 외워서 진행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첫 방송이 나갈 당시까지만 해도 그는 한국어를 능숙하게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사실 한국사람은 초난강 프로그램을 보며 대본이라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군인 인터뷰를 할 때 병역제도에 관해 한국인 입장에서 너무 일본인의 스테레오타입에 맞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의심스러웠거니와, 결정적으로 그 군인이 완벽한 예비군 복장(명찰과 부대표식 제거 및 개구리마크 부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 배우의 군인 분장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며, 나중에 방영된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그 사람은 그 방송을 통해 초난강과 교류하게 된 사람이라고 했다.)

- 그러던 것이, 그 첫방송으로부터 불과 1년 사이에 우리가 아는 그 초난강의 한국어 실력으로 발돋움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때때로 일본어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지경이 될 때까지 공부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대담에서는, 짜여진 각본이 아닌 실제 한국어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사람이 독하게 마음을 먹으면 못 하는 것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사 윤하도 윤손하도 박용하도 다 일본어를 하는데 나라고 왜 못하겠어.

by 홍월영 | 2008/07/12 21:21 | 잡담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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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라쿤J at 2008/07/12 21:25
........과연 난강이횽은 뭔가 대단한듯.;ㅅ;

...음, 저도 해볼까요?[갸웃갸웃]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7/12 22:16
그 첫 한국로케 때 이대앞에 가서 자기 알아보는 사람 있는가 계속 길거리인터뷰(?) 뭐 그런 거 했는데 단 한 사람도 없어서 충격먹은 모양이더라고. 그게 2001년.
Commented by Frey at 2008/07/12 21:27
그래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야지요.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과정이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7/12 22:17
솔직히 요즘은 그냥 희망사항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지요 뭐.. 저부터 잘해야.
Commented by 리칼 at 2008/07/12 21:38
저도 그런 독한 맘을 먹어야 하는데 그게 안됩니다...ㅠ.ㅠ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7/12 22:17
쉽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Commented by Mizar at 2008/07/12 21:40
스스로 멋진 요리를 내놓을 수 있는 요리사라.. 좋은 이야기네요..^^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7/12 22:17
워낙 낚이고 다니다 보니 이골이 나서(...)
Commented by 양과알 at 2008/07/12 22:41
무언가 흔들리지 않는 무엇이 있으면 좋겠지만 모르니 그냥 이리저리 쓸리고 있습니다.
그저 지금 자신이 논리가 빌린 것을 겹쳐서 기운 누더기라는 사실을 알 뿐입니다.
언제쯤 자신이 바보가 아니라 말 할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7/12 23:16
누더기라는 걸 안다고 얘기는 하는데 실제로는 모르고 있는 사람도 많이 보여요. 부처님 말씀 중에 이런 사람들 가리켜서 접시물에 코박고 있다고 햿던가요; 근데 진짜 이건 옆에서 누가 뭐라하기 전에는 지가 깨우치기 힘든듯;;; 저 또한 그러지않을까 맨날 스스로를 돌아보고는 있습니다만..
Commented by Earthy at 2008/07/12 22:57
저는 그런 요리사가 되기에는 너무 일천하여...
그냥 망상이나 펴는 중. 자기 생각을 펴는 데에는 가상과 망상이 가장 좋다더군요.

초난강 씨는... 스맙프가 괜히 일본 최고 수준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분...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7/12 23:18
스맙프 정말 "뭐 저리 노래를 못하냐?-_-" 싶긴 하지만 그 외에는 진짜 대단한 그룹이죠.
Commented by 슈지 at 2008/07/12 23:52
비단 형님뿐만이 아니라 저 역시도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소비하는 입장에서 베껴 만드는 입장으로 조금은 위치가 바뀌었지만 굳이 베끼지 않고도 만드는 분들이 부러운 것도 사실이구요. 그래서 더더욱 상기하고 기억할 겁니다.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덧. 두드리면 열리긴 하더군요. 심기일전하여 원하시는 결과 얻어보시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7/13 03:15
너도 이제 머리뚜껑이 간질간질할 때가 아닌가 싶다만...
Commented by 死海文書 at 2008/07/13 00:23
제 자신의 논리를 끝없이 공격하고 있지만. 언제쯤 아포리아가 안 나올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7/13 03:15
이외수옹의 20대도 참 성기고 힘들었다 하죠. 걍 버티다 보면 어떻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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