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708

무라카미 류의 자전적 소설 씩스티나인을 끝까지 다 읽다. 찔끔찔끔 읽어 오다 이 흥미진진하고 유쾌한 이야기의 끝은 어디일까 싶었는데 결국 '거기에 그러하였다' 라는 식으로 끝이 났다. 자전소설은 한 사람의 생애를 기반으로 했기에 아마도 고전적인 이야기구조에 딱 들어맞는 것이 오히려 힘든 일이겠지만, 어쨌든 밍숭맹숭하다. 제길, 이런 종류의 유쾌한 경험담이라면 우리 마고 놈들도 무라카미 류 못지않게 잔뜩 있다구.

장마철답지않게 날씨는 화창한데 문득 달라붙은 우울한 감정이 좀체 가시지 않는다. 세 시간만에 책상을 떠나버린 시선은 좀체 교과서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인터넷을 켠다. 노무현을 총통으로 만들려고 악을 쓰는 인터넷의 광신도들은 내가 필사적으로 피해다녀도 결국에는 내 눈으로 기어들어온다.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아 생각보다 지지부진하다. 이제 겨우 이틀째인데 이러면 어떻게 하나. 발에는 다시 물집이 잡혔고 또 나는 생살을 바늘로 뚫어 꿰어놓았다. 우울하다.

우울함을 치유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 잔다. 아니면 사람을 만나거나 엔터테인먼트에 뇌를 씻는다. 그런데 나는 어제 피곤하여 잠을 푹 잤고 사람을 만나자니 누구를 어떤 구실로 만나야 할지도 모르겠으며 시간도 금전도 그리 넉넉하지도 않다. 그래서 소설책을 집어들었는데 유쾌한 이야기의 결말은 맘에 별로 안 드는 게다. 차라리 가네시로 카즈키를 사 볼걸 그랬나. 이런 때에 프레데릭 포사이스나 김훈을 읽고 있자면 아마 뇌가 돌아버릴 거다.

어디선가 또 누군가가 커플이 되었다고 깨가 쏟아진다. 축하해야 할 일인데 내심 심통이 난다. 사실 동호회에서 본 그들은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니 관심이 있고 어쩌고 할 문제 자체가 아니다. 단지 보고 있으면 부러움과 질시가 동시에 일어나 다시 인터넷을 끈다. 그러고보니 카메라에 사람의 뒷모습이 아닌 앞을 담은 게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그 날짜가 헤아려지지도 않는다. 나는 방관자이고, 불신자이며, 언제나 변방에 머문다. 씩스티나인의 야자키는 그런 나의 모습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다 - 본질은 거의 비슷한 놈인데도 불구하고.

by 홍월영 | 2008/07/08 13:43 | 단상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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