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에도 자전거.

지금으로부터 꼭 20 년 전에, 3년 동안 다니던 국민학교 병설유치원을 졸업하고 그 학교의 '1학년'이 되었다. 사실 1학년이라 해도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외할머니 댁(야트막한 고개 너머 개울따라 십리길)과 '학교 사택'인 우리 집을 왔다갔다하며 자랐기에. 나는 여전히 교무실에서 멋대로 열쇠 갖다가 컴퓨터실(기종은 효성컴퓨터 8비트...)과 도서실 과학실을 들락날락하며 내 집처럼 살던 '박선생네 아들네미'였다.

하지만 몇 가지는 확실히 바뀌었다. 유치원의 간식은 우유 급식으로 바뀌었고, 등에 걸쳐메고 다니는 '쓰리세븐' 책가방이 생겼다. (외할머니는 이 란도셀형 책가방더러 항상 '책보'라고 부르던 기억이 난다.) 한편으로는 정말 싫은 뇌염모기 예방접종 주사도 의무적으로 맞아야 했고, 누구나 그렇듯 학교에서 내 준 숙제는 참 하기 귀찮았다. 그런 변화의 속에서 가장 컸던, 그리고 기뻤던 것은, 드디어 '자전거'라 부를 만한 내 물건이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세발자전거는 까마득한 옛날에 졸업했기 때문에 나는 자전거가 없었고 읍내 장터까지 십리 길을 그저 뚜벅뚜벅 걸어다녔다. 장터 사는 친구들은 다들 어린이용 자전거에다 보조바퀴를 붙여 '네발자전거'를 만들어 탔고, 그걸 보며 어린 마음에 그게 그렇게 부러웠었다. 외할아버지께서 타고 다니시던 자전거는 흔히 말하는 '쌀집 자전거'라 너무 커서, 내가 한 번 타려면 흡사 '이웃집 토토로'에서 칸타가 타고 다니던 것처럼 그렇게 매달려서 타야 했다.



나보다 몇 살 터울 많은 누나는 고학년이 되면서 예쁜 빨간색 삼천리 자전거를 선물받았다. 그것은 보조바퀴가 없고 약간은 날렵한 일반 여성용 자전거였다. (바구니 없음) 여전히 내 키에 비하면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만큼 컸지만 그래도 외할아버지 것보다는 탈 만했다. 안장에 올라가려면 뭔가 딛을 게 필요해도, 적어도 매달려서 탈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미 국민학교 1학년 때 신장과 체중이 고학년과 비슷했다.) 하여튼 누나가 피아노 학원 마치고 집에 올 때까지 그 자전거는 내가 썼다. 그것 때문에 누나랑 매일같이 아웅다웅 싸웠다. 어쩌면 나는 누나가 선물로 그것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 질투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티격태격은 1988년 5월 5일까지 계속되었다.

이모네 댁은 냉면 얘기하면서 이 블로그에 몇 번 언급한 적 있다. 재료의 속임 없이 맛의 자존심을 지켜서 그런지 이모네 집은 항상 장사가 잘 됐고, 집안 사정이 좀 피어서 그 시절에 벌써 오리지널 소나타 구루마를 끌고다녔다. 마산시청 관용차가 '싸롱'이던 시절이다. 어쨌든 살림 넉넉한 이모는 이종사촌 형에게 새 자전거를 선뜻 선물하기로 마음먹었고, 이제 더 이상 이종사촌 형은 자신의 헌 자전거를 타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내 것이 될 거라는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비록 중고였지만, 그것이 프랑스제 자전거라는 말에 온 동네가 술렁거렸다. (면내에서 바퀴 달린 것 중 외제는 철도청 소속 EMD 디젤기관차(....)와 6.25 때 쓰던 '제무시(GMC)' 트럭 - 그것도 온통 녹이 슬어서 시퍼런 락카로 칠해놓은 - 밖에 없었다.) 실은 굳이 외제여서가 아니라, 기차가 하루 네 번 지나가는 시골에서는 '삼천리표' 자전거가 아닌 게 등장한다는 것 그 자체가 꽤나 입에 오르내리기 좋은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프라이드 승용차 뒷좌석을 눕혀서 억지로 싣고 온, 마산으로부터 온 그 자전거는 첫눈에 보기에도 형편없었다. 프레임은 군데군데 녹이 슬었고 페인트는 색이 바랬으며 체인덮개는 온통 우그러져 너덜너덜했다. 어쩐지 상혁이 형이 안 탈만 했다 싶었다.(....) "이게 월남 자전거가?" 하며 구경온 친구들도 전부 뭔가 김샌 듯한 표정이었다. - 그 때 '프랑스'는 어느새 '월남'으로 와전되어 있었는데, 학교의 '강 주사' 아저씨가 소싯적에 베트남전쟁 갔다 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아저씨 눈에는 외국은 죄다 미국, 일본 빼고는 월남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월남은 프랑스의 영향을 좀 받은 지역이긴 하다. 쿨럭)

"아빠, 나 이거 안 탈끼다!" 하고 징징거리던 어린이날의 끝은 결국 어머니의 매차리(몽둥이)찜질로 막을 내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소싯적에도 워낙에 고집이 고래심줄 같은 놈이었던지라, 내 기억에도 거의 몇 시간을 떼쓰며 데굴데굴 굴려다녔던 것이다. 게다가 형의 새 자전거는 얼마나 좋아 보이던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철없었구나 싶지만....) 모친도 근본이 경상도 여자인지라, 교사 경력 십분 발휘해 잘 타이르다가 마침내 인내심이 바닥나면 폭발(?)하고 말았다. 남의 집 새끼와 달리 제 집 새끼는 일단 패면 말은 들으니까.(.....)

그렇게 얻어맞고 나서 놀러 간 읍내 태권도 도장에서도 결국 싸움판이 벌어졌다. 안 그래도 있는 대로 열이 받아가지고 있는데 거기다 대놓고 "니는 뭐 짜다라 자전거 자랑 해샀다가, 뭐 그리 얄구지 고물딱지를 주묵노?" 라고 어떤 놈이 약을 올려대서 - 마침내 나는 놈의 얼굴 한복판에 주먹을 날리고야 말았다. 쉬는 날이라고 만화 비디오 틀어 준 체육관에서, 태권도 겨루기가 아니라 때아닌 이종격투기가 벌어졌다. 결국 관장님한테 둘 다 줄빳다를 맞아야 했다. 무예를 배우는 놈이 함부로 폭력 쓰지 말라면서, 정작 사범님은 국민학교 1학년생들에게 야구방망이로 빠따질을 했다. 하여튼 최악의 어린이날이었다.

그 다음 일요일. 자전거는 왜인지 산산조각 분해되어 있었다. 어디선가 잔뜩 들고 온 락카며 페인트, WD-40이 마당 한켠에 잔뜩 널려있었고 아버지는 마스크를 쓰고 프레임을 샛노랗게 칠했다. 우그러진 체인덮개도 망치로 두들겨 펴고, 붉은 도료(아마도 녹방지제가 아니었을지)를 입힌 후 역시 노란색 락카로 깔끔하게 칠을 했다. "당신은 내가 아 자전거 손봐달라 캤지, 누가 일요일 꼭두새벽부터 시끄럽게 해사라 캤습니꺼." 라는 어머니의 날선 잔소리가 안방에서 들려왔다. 아버지는 볼멘소리로 툴툴댔다. "저 여편네가 고치주라 캐살때는 언제고." 어쨌든 반나절만에 자전거는 완전히 새 것처럼 바뀌었다. 우와.

하지만 아버지는 "쫌 심심하다 그자?" 라고 말씀하시더니 검은 색 락카통을 짤깡짤깡 흔들어댔다. "우찌 할라꼬예?" 라는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이것이었다. "어, 니 치타 알제? 그거."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고물딱지였던 자전거는 그렇게 완전히 되살아났다. 원래 짙은 노란색에 알 수 없는 서양풍 만화캐릭터가 그러져 있던 낡고 우아한 프랑스제 자전거는, 그렇게 매우 야시시한 노란색에 검은 점이 박힌 채, 꼭 전지현이 프린터 선전에 입고 나오는 옷같이 도발적인 자전거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잃어버릴 래야 잃어버릴 수가 없는 컬러였다. 읍내 어딜 갖다놔도 "아 그 박선생네 자전거?" 라고 알아봤었으니까. 어쨌든 타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오버홀을 한 번 한 덕분인지 도로사정 나쁜 시골길에서도 미칠듯한 스피드를 낼 수 있었다. 게다가 튼튼했다. 부품이라든가 다른 모든 내구성이 정말로 뛰어났다. 체인이 가끔 빠지긴 했지만 곧 끼우는 요령을 터득하자 그쯤은 고장도 아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체인 한 번 빠지면 자전거포까지 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덕지덕지 붙어있던 때를 벗겨내고 말끔히 수리하니까 정말 강력한 머신이 탄생한 것이었다. 태권도장에서, 피아노 학원에서, 아니 학교 전체를 통틀어 이제는 '네발자전거' 따위는 나와 비할 게 아니었다. 그 기쁨을 어찌 말할 수 있으랴. 어느덧 자전거 스피드 경쟁에서 내 상대는 4학년 형들이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프랑스가 자전거로 유명한 나라임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십 년도 더 되어서의 일이다.)

어느덧 자전거는 내게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학원 갔다가, 혹은 멀리 먼 동네로 놀러갔다가 (가끔 아버지 친구 선생님들한테 '니가 와 이 동네에 있노?' 하면 그날 저녁엔 몽둥이 찜질이었다. 시골 학구는 거의 면 단위로 이루어져 있고, 집에서는 멀리 가면 길 잃어버린다고 면 밖으로는 못 나가게 했다.) 늦기 전에 집에 오려면 페달을 최고 속도로 밟아야 했다. 해가 지면 집에 가는 길이 무서웠다. 학교 사택은 동네에서 좀 떨어진 대나무밭 아래에 있었고, 이웃집이라고는 덜렁 두 개인데 우리 옆집은 조폭에서 은퇴한 할배가 살았고, 뒷집은 몰락한 만석꾼네 기와집이었다. 공통점은 무지하게 썰렁하다는 점이었다. 결정적으로 대나무밭과 학교 사이의 솔밭 등성이는 공동묘지였다.(......) 여튼 자전거가 생긴 덕분에 나는 읍내에서 학원을 다니고 놀다가도 5시 30분에 만화 '실버호크'와 '율리시스'가 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3학년 즈음해서 마산으로 이사온 후에도 자전거는 계속 내 곁을 지켜주었다. 그 야시시하게 도발적인 색깔은 마산 와서도 화젯거리였다.(....) 마산은 역시 도회지라 그런지 정말 엄청나게 차가 많았지만, 곧 적응할 수 있었다. 시내버스며 자가용 등을 이리저리 피해다니며 잘도 끌고 다녔다. 이사오기 전에 이미 누나 자전거는 내가 잃어버렸고 - 내 자전거 말고도 누나 꺼 잠깐잠깐 끌고 다니다 결국 사고를 쳤다 - 내 것도 이미 4학년쯤 되어서는 뒷바퀴 빗물받이가 날아가고 안장은 스펀지가 다 떨어져 쇠 프레임만 남아 있을 지경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정작 내가 자전거와 멀어진 것은 자전거를 안 타고 나간 어느 날, 합기도 도장에서 돌아오다 당한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휠체어와 목발을 번갈아 사용하던 내가 완전히 재활하고 난 후에도 자전거는 타지 않았다. 그 때부터 자전거는 지하주차장 가는 층계참 아래 버려져 있었고, 그렇게 나는 자전거를 잊어갔다. 이내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 아침 일곱시 반에 집을 나서 밤 열한시에 들어오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수능 칠 때까지도 그 자전거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그렇게 남아있었다.

그러다 대학 다니던 시절 어느 날, 방학을 맞아 마산 집에 내려가보니 예전에 자전거가 있던 곳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철장수가 주워 갔겠거니 했다. 어차피 거의 십여 년을 관리도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나는 내 어린 시절의 한때를 같이 했던 그 자전거가 더 이상 그 곳에 없었던 것을 보고는, 내가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떤 강을 건너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전거는 더 이상 그 곳에 없었다.

by 홍월영 | 2008/06/09 03:38 | 단상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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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택씨 at 2008/06/09 09:13
홍월영님을 구성하는 5%의 기억이군요.
프랑스제 자전거라니!!!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6/09 10:45
뭐 그 집에 가서 놀랐던 기억으로는 '프링글스'와 '리츠'를 난생 처음 보고 와 이런 과자도 있나.. 싶었던 것도 있습니다(......)
Commented by 한양댁 at 2008/06/09 10:10
강아지군이 타는 자전거도 나중에 이런 기억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선물받고 얼마 되지 않아 바구니가 떨어지고 브레이크가 고장나서, 제 손으로 두들겨서 고쳐줬거든요. 흘흘흘~~~~ (두들긴 이유는 고칠 줄을 몰라서 때려맞추느라...)

사실, 동생에게 자전거 잠깐잠깐 빼앗기다가 끝끝내 동생 손에 자전거가 분실당한 누님 마음이 더 궁금합....쿨럭쿨럭....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6/09 10:45
나중에 그게 다 추억이 될 거에요, 아마.
그리고 누나는.... 이미 그거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히 맞았습니다(............)
Commented by 暗雲姬 at 2008/06/09 11:22
아아, 그 때도 사진 찍었더라면 한 컷 정도 남았을 것을.
보고 싶네요.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6/09 19:25
그러고보니 희한하게 자전거 사진은 없습니다.
Commented by 코토네 at 2008/06/09 15:41
제게 있어서 자전거는 초등학교 때의 추억입니다.ㅠ_ㅠ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6/09 19:25
저는 국민학교(....)
Commented by 코토네 at 2008/06/10 13:05
그러고보니 제가 다니던 시대에는 국민학교 였었습니다.
Commented by 死海文書 at 2008/06/09 21:16
초등학교 때 처음 타게 되었네요.

처음 보조바퀴 없이 페달 밟았을 때부터 잘 타길래 정말 잘 타는 줄 알았더니 가면 갈수록 개판이 되는 안습한 상황에 몰려 결국 자전거를 폐기한 씁쓸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 아니, 다른 사람들은 자주 타면 잘 타던데 왜 나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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