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06일
그냥 생각나서 써 보는 옛날 이야기. 2
걍 봉인해제하고 쓰는 김에 옛날 얘기 하나 더.
물대포 - 살수차는 옛날 그 시절에는 소방차였다고 한다. 실제로도 사진이 남아 있는데, 지금은 철거된 마산선 철로 위에 올라간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장면이다. (현 자산동 철교는 원래 두 개였다. 하나는 지금 남아있는 몽고정 뒤의 진주로 가는 경남선 철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현 3.15 의거탑 오른쪽으로 해서 진영, 서울/부산으로 가는 마산선 쳘교.)
지금 살수차는 그 파괴적인 위력을 행사하여 사람들을 해산하는 데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춥고, 맞으면 얼얼하고 다칠 수도 있다. 물 맞고 쓰러지는 영상이 이미 뉴스를 통해 탔으니 뭐... 물이 얼마나 무섭냐면 - 굳이 워터제트의 예를 드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그보다는 내가 직접 겪은 예시가 더 낫겠다. 태풍 매미 때 해일이 들이닥쳤을 때, 내가 근무하던 곳의 지하실은 바닷물의 직격을 맞은 게 아니라 살랑살랑 넘친 물이 지하에 고인 것일 뿐인데도 그 육중한 기계실 철문이 종잇장처럼 우그러졌다. 물은 인간이 통제하기 매우 어려운 수단 중 하나다.
그런데 1960년 당시의 살수차는 기본적으로는 물대포 용도가 아니었다고 한다. 진압용 살수차가 아니라 그냥 소방차를 몰고 와서 뿌린 것이었는데 이게 좀 고약하다. 지금도 CS(최루액)를 탔네 어쩌네 하는 말이 있지만, 그 당시의 물에는 CS가 아닌 붉은 염료를 탔다. 물을 맞으면 당연히 학생들 교복의 새하얀 칼라는 붉게 물들 것이고, 그것은 '이 학생이 데모에 참여했다' 라는 좋은 증거가 되었다. 남학생은 몰라도 여학교의 경우는 심지어 혼사길이 막힐 정도로 당시엔 심각한 사안이었다. 뭐 나중에 가면 마산여고 교장이 학생들을 인솔 하에 나오는 지경이 되기는 했지만. (선생들은 초기에 여학생들의 신발을 모두 감추는 등 시위에 참여 못 하게 하려다, "차라리 인솔자로서 책임을 지고 학생들을 보호하겠다" 며 교장부터 서무까지 전부 같이 나왔고, 그게 부산일보 1면에 실리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 물대포에 대항했던 것은 철교 인근 창녀촌(지금도 있다)에 살던 매춘부들이었는데, 그녀들은 철로의 자갈을 주워다가 행주치마폭에 담아 철둑 위로 부지런히 날라 주었다. 이후 세월이 흘러 3.15 의거탑에 서 있는 동상에 '남학생, 여학생, 남자 시민의 모습은 있는데 왜 그녀들은 묘사되어 있지 않은가' 라는 이의가 공청회 때 제기된 바 있다.
(중략)
.... 이런 잡지식은 그 당시를 추모하는 용도로 기억해야 할 것인데, 이게 실생활에 관련있어 보이는 것은 좀 아니다 싶다. 어쨌든 오늘도 비겁하게 말을 아끼지만 속내는 답답해서 그냥 비뚤어진 형태로 글을 쓴다.
물대포 - 살수차는 옛날 그 시절에는 소방차였다고 한다. 실제로도 사진이 남아 있는데, 지금은 철거된 마산선 철로 위에 올라간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장면이다. (현 자산동 철교는 원래 두 개였다. 하나는 지금 남아있는 몽고정 뒤의 진주로 가는 경남선 철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현 3.15 의거탑 오른쪽으로 해서 진영, 서울/부산으로 가는 마산선 쳘교.)
지금 살수차는 그 파괴적인 위력을 행사하여 사람들을 해산하는 데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춥고, 맞으면 얼얼하고 다칠 수도 있다. 물 맞고 쓰러지는 영상이 이미 뉴스를 통해 탔으니 뭐... 물이 얼마나 무섭냐면 - 굳이 워터제트의 예를 드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그보다는 내가 직접 겪은 예시가 더 낫겠다. 태풍 매미 때 해일이 들이닥쳤을 때, 내가 근무하던 곳의 지하실은 바닷물의 직격을 맞은 게 아니라 살랑살랑 넘친 물이 지하에 고인 것일 뿐인데도 그 육중한 기계실 철문이 종잇장처럼 우그러졌다. 물은 인간이 통제하기 매우 어려운 수단 중 하나다.
그런데 1960년 당시의 살수차는 기본적으로는 물대포 용도가 아니었다고 한다. 진압용 살수차가 아니라 그냥 소방차를 몰고 와서 뿌린 것이었는데 이게 좀 고약하다. 지금도 CS(최루액)를 탔네 어쩌네 하는 말이 있지만, 그 당시의 물에는 CS가 아닌 붉은 염료를 탔다. 물을 맞으면 당연히 학생들 교복의 새하얀 칼라는 붉게 물들 것이고, 그것은 '이 학생이 데모에 참여했다' 라는 좋은 증거가 되었다. 남학생은 몰라도 여학교의 경우는 심지어 혼사길이 막힐 정도로 당시엔 심각한 사안이었다. 뭐 나중에 가면 마산여고 교장이 학생들을 인솔 하에 나오는 지경이 되기는 했지만. (선생들은 초기에 여학생들의 신발을 모두 감추는 등 시위에 참여 못 하게 하려다, "차라리 인솔자로서 책임을 지고 학생들을 보호하겠다" 며 교장부터 서무까지 전부 같이 나왔고, 그게 부산일보 1면에 실리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 물대포에 대항했던 것은 철교 인근 창녀촌(지금도 있다)에 살던 매춘부들이었는데, 그녀들은 철로의 자갈을 주워다가 행주치마폭에 담아 철둑 위로 부지런히 날라 주었다. 이후 세월이 흘러 3.15 의거탑에 서 있는 동상에 '남학생, 여학생, 남자 시민의 모습은 있는데 왜 그녀들은 묘사되어 있지 않은가' 라는 이의가 공청회 때 제기된 바 있다.
(중략)
.... 이런 잡지식은 그 당시를 추모하는 용도로 기억해야 할 것인데, 이게 실생활에 관련있어 보이는 것은 좀 아니다 싶다. 어쨌든 오늘도 비겁하게 말을 아끼지만 속내는 답답해서 그냥 비뚤어진 형태로 글을 쓴다.
# by | 2008/06/06 00:21 | 단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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