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재림한 중국대륙의 지진

나흘 전 중국 쓰촨성[四川省]에서 발생한 지진재해의 면모가 점차 외신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발생 당시부터 많은 언론들이 1978년의 "탕산[唐山] 대지진"을 관련보도 차원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날이 갈수록 '탕산'의 그림자가 쓰촨에 짙게 드려지는 듯한 느낌이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사망자가 10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불과 몇 주 전까지 티벳 독립운동 유혈진압 얘기가 나오던 곳에서 단숨에 최악의 자연재해를 맞은 걸 보니, 인도적 관점에서는 이런 얘기 하면 안 되지만 (인명은 재천이니까...) 참... 이하 생략. 솔직히 죽은 시민들이 무슨 죄가 있나, 그저 명복을 빌 뿐.

비교적 지세가 안정되어 있는 한반도와 달리 중국은 고대로부터 지진이 많다. 몇 년 단위로 찾아오는 풍수해만큼이나 잦지는 않지만 적어도 몇십 년에 한 번씩은 피해를 겪는 듯하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원시적 지진계가 중국의 두꺼비구슬임은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문제는 이 동네에 워낙 인구가 많이 살다 보니 재해는 반드시 재난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점일 것이다. 꼭 30년 전에 일어난 탕산대지진이 그러했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대만을 '자유중국'으로, 대륙을 '중공'으로 부르던 시절이라 우리에게는 별로 크게 기억되고 있지는 않지만, 세계적으로는 대단히 큰 재앙의 기억으로 꼽히고 있다.




탕산은 텐진, 베이징 인근의 (중국 관점에서는) 중급 규모 도시이지만 이 도시는 7백만 명의 시민이 살고 있었고 이는 현재 부산, 울산, 김해, 마산, 창원을 합친 만큼의 숫자다. 그 곳에 최악의 직하형 지진이, 그것도 새벽에 일어났다. 때문에 더욱 피해가 커져 희생된 사람 숫자만 해도 무려 24만 명에 달했다. 피해를 입지 않은 탕산시민들도 여진이 잦아들 때까지 자신의 집 건물이 무너질까봐 길가의 콘크리트 하수도관 자재 속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중국 당국에서는 이 시가지의 복원을 놓고 찬반 격론이 벌어졌는데(너무나 '깨끗하게' 파괴되어 차라리 안전한 곳으로 시가지를 옮기는 게 나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공산당은 7개월 후 이 거리를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부터 중국의 지진 전문가들은 "우물의 수위가 변했다"거나 "건물의 페인트칠이 눈에 띄게 빠르게 벗겨지고 있다'는 등의 전통적인 중국의 지진 징조에 대해 보고했으며, 또한 현장의 다른 전문가들 - 탕산시청 내 지진사무실과 인근의 광산 사무소 등 - 은 명백한 지진의 전조인 땅울림이나 심각한 균열의 확대현상 등을 발견하여 보고하고, 지진의 위험을 예보했다. 중앙정부의 국가지진국은 3개월 전 베이징과 탕산을 포함한 허베이 성 일대의 지진위험이 심각하다며 정확히 그 위험을 예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탕산시 당국은 이를 묵살했고, 소요사태를 우려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탕산으로부터 115km 떨어진 인구 1백만 명의 칭룽현[靑龍縣]은 예보를 받아들여 조치를 취하였고, 심지어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칭룽현의 관계자가 이 예보를 보고받은 것은 불과 16일 전, 그것도 탕산시에서 열린 지진 관련 공무원 회의였다.


탕산시 당국이 이러한 경고를 무시한 것은 중앙정부의 의지가 한몫했다. 그 지진 당시에만 하더라도 "옆집의 당 간부의 자제를 먼저 구하고 다시 자신의 아이를 구하러 갔더니 아이가 이미 죽어 있었다던 멸사봉공적 희생의 미담사례" 같은 것이 중국 언론에 보도되고 있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당시의 중국이란 "중공" - 일명 "죽(竹)의 장막"이 펼쳐져 있던 전통적 공산파쇼사회였던 것이다. (지금도 중국이 완전히 민주적이냐는 것에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그 당시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러한 장막 속의 권력구도는 흔들리고 있었다. 문화대혁명의 후유증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죽은 숫자의 두 배에 달하는 3천만 명의 희생자를 냈고, 이 후유증은 마오쩌둥의 마누라인 장칭을 포함한 권력실세 '4인방'의 숙청으로도 해소되지 않았다. 절대권력자인 마오쩌둥에 이어 대만의 장제스와 함께 주언라이도 병사하였고 온건한 덩샤오핑은 실각하여 목숨만 겨우 건져 시골로 쫓겨났다. 이를테면 이 시기의 중국은 냉전 하의 국제정세에서 내부적으로 매우 흔들리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중국 당국은 수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대규모 연담도시에 소요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우려했다. (실제로 이번 지진에서 쳉두[成都]시에서는 수돗물이 오염되었다는 유언비어 때문에 시민들이 물을 사재기하는 사태가 벌어져서 담당 관리가 TV에 출연하여 겨우 소요를 가라앉혔다.) 그들은 "쓰촨의 방진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힘든 판국에 일어나지 않은 지진에 의한 행정력 공백"을 우려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어물쩍 넘어가려는' 시도는 대단한 패착이었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연재해 앞에서 무력해지고 만 결과를 초래했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 널리 퍼져있는 주술적 믿음, 즉 자연재해가 어떠한 정치적 이변의 전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경우에도 유효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중국 당국이 가장 싫어하던 결과였다. 그들은 전통적인 통제 사회에서 권력을 잃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그러던 것이 바로 그 최악의 지진 이후에 덩샤오핑이 권좌에 복귀하고, 흑묘백묘론을 앞세운 개혁개방 정책이 시기적절하게도 물꼬를 텄던 것이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1992년 한-중 데탕트의 시작 시기를 1978년으로 잡기도 한다.)

- 사실 이러한 '현상'이 정치적 '변화'의 전조가 되는 것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현상'은, 곧 '잠재되어 있는 사회적 갈등'을 표면화하는 부싯깃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이어지는 전 국가적 이벤트 사이에서 민주항쟁이 성공한 것은 단순히 시기적으로 일치하는 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현재 중국 대륙에는 대지진과 티벳의 유혈진압 외에도 창궐하는 전염병과 겨울의 한파, 농약만두 사건 등 국내외적으로 터져나오는 사회적 이슈가 악재로 기능하고 있다. 과연 베이징 올림픽으로 이러한 사회불안과, 그리고 잠재적으로 터져나올 가능성이 있는 구조적 갈등을 무마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중국 공산당의 입장으로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미묘하게 타협한 권력과 자유 사이의 매커니즘이 흔들릴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안문항쟁을 탱크로 깔아뭉개버린 이후로 속으로 누적되는 모순이 언젠가는 한 번은 터져나올지도 모른다. 게다가 중국의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빈부격차를 야기하며 그 차이는 우리의 상상 이상이다. 이러한 현상의 끝에 중국대륙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바로 옆동네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가 예의 주시해야 할 일이다. (당장 시장경제로 인한 사회갈등을 무마하기 위한 '시범케이스'로서, 우리 중소기업들이 중국 현지에서 '시장 외적인 문제들'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30년 전 탕산에서 벌어진 일을 지금 기억해보는 것은, 그러한 의미의 연장선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by 홍월영 | 2008/05/15 08:40 | 단상 | 트랙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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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하늘바람몰이 at 2008/05/15 13:40

제목 : 중국의 지진은 신의 심판이 아니다
1.인간적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것이고, 해서도 안된다. 예전에 동남 아시아에 엄청난 쓰나미가 몰려와 많은 사람이 희생된 일이 있었다. 그 때, 개신교단을 대표하는 대형교회의 김 모 목사님은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 하여 물의를 빚었었다. 마치 지금 그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다. 쓰촨성 대지진을 두고 '하나님의 심판 또는 경고'라 하는 글들이 눈에 띄는 것이다. 중국은 기독교인보다 아닌 사람이 더 많고 이들에게 '하나님의 심판 ......more

Commented by verisimo at 2008/05/15 09:10
어제 룸메가 뉴스 보는데 지나가다가 깜짝 놀랐었어. 2005년 10월 다카 공항에서 탑승시간 기다리다가 CNN으로 전해진 속보가 생각나. 카쉬미르 지진. 옆 자리에 앉은 애들은 시끄럽게 떠들지, 공항 TV는 볼륨도 낮지 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보고 있었지. 후 ㄱ-

재해가 부쩍 잦아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에 응한 인간들의 예방 시스템이라던가 구조 시스템들은 더욱 어이없어지는 느낌이고. 2005년에 카트리나와 카쉬미르, 2006년에는 쓰나미, 그리고 올해는 버마와 중국이네. 자연재해만 해도 이런데...

이번 사태도 탕산 지진처럼 예고가 있었고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했다-란 수사 결과가 나오기만 하면 중국 뒤집어지겠구나. (그런 결과가 공론화되게 중국 정부가 냅두겠느냐가 문제겠지만)

그나저나 중국 정말 날이 갈 수록 살만한 곳이 못 되어가는 것 같다. 태호, 상해 등등 환경 문제도 들끓고, 지식인들은 아노미에 휩싸여서 ㄱ-
Commented by 로무 at 2008/05/15 10:07
스촨지진의 최고 문제는, 진원지에 가까운 대도시는 피해가 적고, 그 주변의 2차도시(그러니까 서민사는데)가 완전 아작났다는 점이라고 하더군요
Commented by 에르네스트 at 2008/05/15 10:43
탕산대지진도 '공식발표'가 24만이지 그곳에 도와주러간 국제기구추정은 '100만'명은 죽어나갔을것이다~ 라는 소리도 있다고합니다...
Commented by 死海文書 at 2008/05/15 11:19
중국 당국이 24만이라고 발표했던 탕산이라면 아마 더 죽어나갔다고 생각해도 무방하겠지요.

중국이야 좀 밉긴 하지만 제발 사건은 그만 터졌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뭐 옆에서 봐도 기가 막힐 정도니....
Commented by 산왕 at 2008/05/15 14:29
피해자 단위가 천만 단위라던가요; 이건 정말; 중국 스케일이라고밖에는 할 수가 없겠습니다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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