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로(元曉路)



고려시대 말에는 이곳이 '용산강'이라 하여 남경에서 멀지 않은 권세가들의 리조트였다고 한다. 청파동에서 한강으로 흘러드는 개천 (영화 '괴물'의 배경이 된 원효대교 북단이다)이 길게 모래톱을 이루어 장관을 이루었고, 효창동에서 원효로동에 이르는 구릉지대에는 개경에 집을 둔 중신들의 별장이 드문드문 있었다고 전한다.

일제시대에 신작로가 나서 모토마치(元町)이라고 부르던 것을, 광복 이후에 개명하며 원효대사의 이름을 붙였다. 당시 정책담당자로서는 개명 수고를 덜면서도 위인의 이름을 붙이는 묘책이랍시고 좋아했을 듯싶지만, 이후 서울특별시의 정책에 깊이 관여한 손정목 교수에 의해 이 잔머리는 매우 격렬하게 비난받았다. 어쨌든 그것이 원효로, 나아가 원효대교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다.

작은할아버지 - 우리 할아버지 7남매 중 일곱째 - 께서 이 곳 어딘가에 사신다고 들었다. 하도 옛날에 뵈어서 아직 살아계신진 모르겠다. 5년 전까진 계셨는데, 이젠 연락이 끊겼으니. 이 동네는 우리 할아버지 칠남매 나이만큼 오래 먹은 동네다. 거기서 더 거슬러올라가면 이봉창 열사(의사인가? 여튼)의 생가터가 이 곳에 있고 그는 1902년에 이 곳에서 나고 자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한다. 좌우간 오래 된 동네다. 사진에 나온 것처럼 아직도 옛날 일본인이 살던 적산가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도 많다.

용산전자상가에서 면도기 충전 코드를 사서 홍대로 가는 7016을 탔다. 버스는 신창동 고개를 넘어 마포역을 지나 공덕로터리로 접속된다. 때이르게 찾아온 더위에 에어컨을 틀어대는지라 신형 버스도 고갯길에는 장사없다. 헐떡헐떡대며 올라가는 버스에 올라 밖을 쳐다보니 오래 된 집들 사이로 군데군데 아파트가 들어올라섰다. 왜 이런 달동네에 아파트가... 하고 생각해보다가 문득 생각의 실마리가 어느 곳에 이르렀다. 철도공사 용산기지창 재개발.

그 넓은 공간 위에 업무지구가 들어서면 이 호젓한 동네도 업무지구를 받쳐주는 다운타운이 되어버릴 것이고, 더 생각을 늘려 보니 이 곳은 여의도-마포-용산을 지나 동부이촌동까지 이어지는 비즈니스 벨트의 마지막 이어지지 않은 연결고리가 된다. 사람들 생각은 벌써부터 수십 년 후의 투자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이십 년쯤 후에는 이 곳도 더 이상 호젓한 주택가와 전자상가 대신 거대한 빌딩의 숲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기사 지금의 원효로 모습을 보고 누가 육백 년 전의 강변유원지 생각을 할 수 있으랴.

이글루스 가든 - 이뉴이트의 사진동아리

by 스칼렛 | 2008/05/01 18:13 | 스케치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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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海月 at 2008/05/01 23:10
어디든지 그렇죠. 정말 어디든 똑같은 모양의 대한민국.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5/02 00:57
역사는 이어지는 것이다- 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계속 이런 글을 쓰는데, 호응이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슈지 at 2008/05/02 09:36
50년대 사진 모아둔 걸 우연히 학교 도서관서 봤는데 그때 풍경과 지금 풍경 비교해보면 상전벽해의 극이죠. 그나마 목포나 군산 정도가 간혹 일제시대 모습 간직한 동네가 남아있긴 하더라구요.
Commented by 택씨 at 2008/05/02 20:35
원효로 일대가 개발에서 비켜서 있기는 했었죠.
하하. 적산가옥을 아는 대학생이 많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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