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23일
내 방 창문 밑이 정자나무가 되었나...

언젠가부터, 동네 어르신 한 분이 항상 우리 건물 앞에 오후 내도록 앉아 계시다가 저녁 되면 없어진다. 그것도 앉아 있는 자리는 항상 내 방 창문 바로 아래, 사진에서 자동차 대놓은 옆부분이다. 거기에 수염이 조선시대 촌로처럼 허옇게 난 할배가 멍하니 앉아 소일한다. 그는 항상 깡소주에 오징어 하나 놓고 시간을 보낸다.
원룸에서 주차공간이랍시고 억지로 만들어놓은 보도가, 비도 땡볕도 피하게 펀펀하다. 게다가 내가 살고 있는 자취방 건물은 사진에서 보듯 구조가 약간 특이하게 생겨서, 3층이 2층 위로 쑥 튀어나와 있는 구조다. 아마 3, 4층 평수 늘리고 그 위 주인집 베란다로 쓸 요랑이었던 것 같다. (-라기보다는, 법적으로 구비해야 하는 주차공간 때문에 내 방 공간을 잘라먹은 듯하다 ㄱ- 그래서 내 방이 좁다) 어쨌든 이를테면 내 방은 일종의 차양막을 쳐둔 것 같은 모양새다. 그리고 내 방 아래 주차장은 딱 평상 하나 크기다.
- 아아, 그렇다. 이건 내 어린 시절 동구 밖에서 자주 보던 정자나무 아래의 풍경이 아닌가. 나무 아래 앉아서 할배들 바둑 두고 술 심부름 시키고.... (강호동이 신인 시절 막걸리가 담긴 알루마이트 주전자 찌그러진 거 들고다니던 그 모습 그대로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신성초등학교에서 하교하는 얼라들이 신발주머니 휙휙 돌리면서 집으로 삼삼오오 돌아가는 광경은 이 동네가 삭막한 고시촌만은 아님을 알 수 있게 하는 모습이다. 매일 세 시만 되면 어딘가의 집에서 항상 같은 꼬마가 "엄마 문열어주세요오오" 하고 소리치는 게 들려온다.
어제는 할배가 맨날 혼자 우두커니 앉아 계시다가 어디서 동무가 놀러왔는지 어르신 두 분이 수근덕수근덕 저녁 내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던데, 도시라고 해도 이런 모양새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하기사, 옛날에 불광동 독바위골 올라가서 불광중학교 넘어가는 고갯마루에도 정자나무에 촌로들이 앉아 있긴 했다. 하지만 거기는 변두리였으니까... 사실상 도심지에 갇힌 달동네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생각 밖이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은지도 모르겠다.
이글루스 가든 - 이뉴이트의 사진동아리
# by | 2008/04/23 15:05 | 스케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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