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P의 황혼을 보며 냉면을 생각한다.

제목만 봐서는 뭔 뻘소리냐 싶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컴퓨터 좀 쓴다는 사람들이 곰플레이어보다 KMP를 선호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마도 KMP가 이렇게 회자되는 이유를, 그리고 넘어간 곳이 "왜 하필이면 판X라TV" 냐고 투덜대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아니, KMP를 안다는 것 자체가 거의 홈페이지-블로그 업계에서 '이글루스'를 안다는 것만큼이나, 검색엔진을 네이버 대신에 구글도 같이 쓴다는 것만큼이나 일반적 시각(?)과는 동떨어진 일이다. (문과 계통이라 그런지 몰라도 후배들 리포트 쓰는 거 보니 거의 100% 네이버 아니면 유료 리포트 공유 사이트에서 긁어왔다. 난 그게 교수님 선으로 올라가기 전에, 붉은 색연필로 표지에 X자를 칠해서 돌려보냈다. 그게 내가 그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이를테면 같은 오너드라이버라도 그냥 덜렁 차 한대 뽑아서 대충 끌고 다니는거랑 이것저것 손보고 튜닝해서 깔끔하고 가벼우며 고성능의 머신을 타고 다니는 것과의 차이와 비슷한 것 같다. '곰'은 매우 편한 플레이어지만 CPU의 점유율이나 이것저것 따라오는 부가기능이 쓰잘데기 없는 것이 많다. 판도X TV는 더 심해서, 무언가 수상한 부가 프로그램들을 설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설치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 나름대로 튜닝해서 쓰겠지만 - 요즘 세상에 "가볍고 튼튼한 것"은 그다지 찾아보기 힘들다. KMP는 그 몇 안 되는 예외에 속했고, 이제 그것이 종막을 고했다고 한다. (정작 이 글 쓰는 나는 SAMI player가 너무 성능이 저하된 이후 WMP9를 써 오다가 11로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귀찮아서 그냥 곰을 써 왔지만.... 사실 DIVX 정품 코덱에 따르는 제약도 많았다.)

냉면이 어디가 원조냐는 사람들에게 '필동면옥'을 소개해 줬다가 "그게 냉면입니까?" 라는 얘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다. 지금에 와서는 '거긴 요즘 사람 입맛에는 안 맞는 곳이로군'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초심자들에게는 다른 곳을 소개해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말이야 바른말이지, '필동면옥'의 그 거칠고 투박한 맛이야말로 원래 냉면의 맛이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가 하여 (어쨌거나 나도 20세기 후반에나 태어난 사람이다) 해방 전부터 서울에 살고 계셨던 어르신들에게 기회가 날 때마다 그 때의 생활 얘기를 여쭈어보았다. 하지만 적어도 냉면에 관해서는 '필동'이나 '을지'가 원조라는 얘기를 부정할 만한 근거가 없었다. 오히려 좀 희끗한 어르신들 중에서는 매우 이름난 어디어디조차도 "거긴 원조가 아냐! 엉터리야!" 라는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세월이 흐르면서 중요시되는 가치가 변해가는 것 같다. 냉면이란 음식도 이런저런 많은 스타일이 생겨나며 많은 고정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맛이 다양해진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적어도 원조가 아닌 것이 원조라고 하면 그건 옳지 않은 것일 터이다. 이를테면 뜻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식초물과 조미료로 대충 만든 육수에 면을 말아놓고 원조 냉면이랍시고 우기는 경우를 보며 나는 KMP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볍고, 버그가 적고, 다양한 성능보다는 튼튼한 안정성'이 프로그램의 덕목이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좀 무거워도 화려하고 부가기능 많은 그런 프로그램들을 사람들이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사실 어느 쪽도 크리티컬한 가치는 아니다. 하지만 가치가 세월에 따라 본말이 전도될수록 입맛이 텁텁한 것도 사실이다.

by 스칼렛 | 2008/03/06 21:52 | 냉면사전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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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명룡왕 at 2008/03/06 22:04
네 글을 읽고나서야 판도x에 넘어간 걸 알게됐다. ㅡㅡ;;
거참... 나 역시 가볍고 성능이 좋아서 수동업뎃을 할 정도로
쓰던 프로그램인데... 정말 아쉽게 됐네... 쩝
Commented by 死海文書 at 2008/03/06 22:28
전 더 좋은 게 나올때까지는 계속 KMP를 쓸 것 같네요.

물론 판도라 인수 직전의 최종버전만 쓰겠지만.
Commented by 리칼 at 2008/03/06 22:34
맛은 할아버지틱한게 제일 맛있어요! =ㅅ=....
어째 요즘은 선지해장국들도 영~ 맛이 아닌 집들이 늘어가는 것 같아 슬픈....(울적)
그러니까 엄마가 끓여주는게 최고 ㅎㅎ.... <- 투박한 맛.
언제 필동면옥 좀 소개시켜 주세요~(ㄹㄹ)~
Commented by novrain at 2008/03/06 23:18
저도 투박한 맛의 냉면을 좋아하는데 대부분 단 맛의 냉면만이 맛있다고 하죠.
생각해보니 검색은 구글, 블로그는 이글루, 미디어플레이는 KMP에 웹브라우저는 불여우를 사용하는군요.
Commented by sublimit at 2008/03/07 04:17
... kmp, ... 제 그래픽 카드와는 충돌을 일으켜서... ㅇ<-<
냉면은 대체 어떤 맛인지 궁금하군요. ...

... 입맛이 쓰죠. ... 어릴때는 정의가 옳다고 배웠는데 요즘은 그것도 아닌거 같고. ... 하암...
Commented by 민승아 at 2008/03/07 12:38
음 저도 어릴땐[지금도 어리지만], 필동면옥같은 냉면은 이건 냉면이 아니야 라고 울면서 먹었는데, 정작 군대와서 보니 가장 먹고 싶은 냉면이 필동면옥 냉면.
으하하<-
Commented by 스칼렛 at 2008/03/07 17:47
명룡왕// 난 그냥 곰이나 쓸란다[....] 그나마 이것도 가벼운 스킨 옵션 없어지면 더 안 쓸듯.
死海文書// 이것저것 플레이어 귀찮아서 그냥 Z통합코덱을 깔아버렸죠,.[...]
리칼// 님은 머리털나고 한번밖에 못봤잖아요(어이) 소개 이전에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novrain// 어 그거 저도 그런데요(.....) 저 같은 경우엔 KMP 이전에 sami를 써 오다가 1년쯤 전부터 곰 쓰고 있지만요;
sublimit// 전 코덱이 AMD랑 좀 문제를 일으키는 듯하더군요.
민승아// ㄲㄲ 이젠 얼실에 가도 아무도 날 몰라~
Commented by xmamx at 2008/03/07 20:36
트아... 씁씁하죠... -_- 자본주의의 물결에 독립정신은 어데로(?)
Commented by 리칼 at 2008/03/07 20:58
계속 시간이 어긋나니까 그렇죠! TT
말이라도 계속 해야 언젠가 만나겠지~ ...~ ...(뭔가 아니다)
Commented by 바람뫼 at 2008/03/26 18:50
저도 판도라로 넘어간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UCC 서비스 중에 가장 불편한 느낌이더군요;(개인적 감상)

말씀대로 KMP는 자신의 입맛에 최대한 맞게 설정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씁니다. 특히 자막 때문에요. 필터 쪽은... 오래 쓰다 보니 역시 쌩영상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KMP로 못돌리는 영상도 있기 때문에 곰도 상시 대기중입니다. <- 때론 그냥 간단히 발 뻗고 보고 싶을 때도.(역설적으로 곰이 리소스를 더 잡아먹는 덕에 오히려 부드럽게 돌아가는 영상도 있더군요;) 곰 스킨은 광고 없는 걸로 쓰고 곰TV도 안 씁니다. -_-a 그리고 마우스 액션이나 키보드 설정도 KMP식으로 바꾸고 씁니다...하핫;

단순명료해서 구글도 좋아합니다. 특히 이미지 검색은 항상 구글로 하는 편입니다. 다만 최근 한국과 일본 구글 대문이 슬쩍 포털화 되가는 것 같아서 움찔 한답니다.(야후의 전철을 밟지만 않았으면;)

뱀발 : 비슷한 맥락에서, 요즘들어 매킨토스를 접하게 되었는데 깔끔하고 미려한 화면은 보기 좋지만 저로서는 조금 귀찮게 하더라도 손 볼 구석이 많은 PC쪽이 더 좋더군요;;;(단순히 익숙해진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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