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24일
[냉면사전] 1. 냉면의 정의

을밀대 평양냉면 (서울특별시 마포구 염리동)
생각건대 우리 전통 음식문화에서 냉면만큼 싸고 맛있게 육기(肉氣)를 즐길 수 있었던 음식도 드문 것 같습니다.
육기 - 원래 이런 단어는 사전에 없겠지만, 어르신들이 사람 몸 아플 때 잘 먹어야 한다는 얘기를 두고 "곡기(穀氣)를 끊으면 안되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한 번 써 봤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식문화로 말할 것 같으면 소 한 마리를 다른 나라에서 십수 가지 부위로 각을 떠먹을 때, 무려 백 스물 다섯 가지 부위로 나누어 즐길 정도로 육고기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문화입니다. (뭐 옆동네 중국은 네 발 달린 건 책상빼고 다 먹는다 하지만...;;)
하지만 모든 선조들이 고기를 즐겨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랏님이나 양반들이야 완자에 너비아니에 탕에 온갖 호사를 누렸겠지만 백성들이야 숙명같이 따라붙는 가난에 허덕이며 살았기에 고기란 명절 때나 겨우 맛보는 음식이었죠. 심지어 퇴계 이황 선생 댁에 찾아온 권철신 대감이 보니까, 일국의 삼정승 밥상이 개다리소반에 나물밥 올라온 것임을 보고 놀랐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입니다. 퇴계 선생이 원래 체질상 육식을 즐기지 않기도 했지만, 청백리로 살다 보면 나라의 큰어른조차도 고기구경 하기 힘든 시절이었단 얘기도 되죠. 그러니 춘향전에 나오는 암행어사 이몽룡의 시조가 당시로서는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에 대한 엄청난 세태풍자였던 셈입니다.
어르신들 말씀을 듣다 보면 요즘처럼 반찬에 하다못해 김치찌개에 고기 한두 점 떠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육기라고는 몇 달을 못 먹는 경우도 많았다지요. 사람이 너무 고기를 못 먹은 채 강도높은 육체노동(이를테면 농사일)을 계속하면 진짜 기운이 없어서 어느 날 픽 쓰러진다고 합니다. 저 또한 어린 시절 촌에서 살 때 보았던 외갓집 밥상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갑니다. 꽁보리밥에 김치에 나물, 있으면 콩자반, 이틀 밤낮을 뚝배기에서 졸아들어 짭짤한 막된장찌개, 그나마 양반집 밥상이라고 자존심을 지탱하는 건 간장 한 종지와 구운 김 한 톳. 가끔 생선이라도 한 마리 올라오면 그게 별미였죠. 80년대 후반쯤 가면 이제 우리 집 밥상은 좀 나아져서 생선은 자주 봤는데 외할머니는 아직도 저렇게 차려놓고 진지를 하시죠.
또, 비록 냉면에 대한 얘기는 아니지만 허영만선생의 '식객'을 살펴보면 이런 장면이 나오죠. '하동관' 곰탕집 주인 어르신의 말인데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60년 전에 고기맛 보기가 쉬웠겠습니까, 요즘처럼 반찬이나 많았던 시절이겠습니까. 모처럼 육고기가 들어 있는 곰탕을 먹을 때도 반찬은 깍두기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깍두기 먹고 남은 국물도 집어넣고 먹는 거지요. 날계란도 당시는 흔치 않은 단백질이었습니다. 비리지만 곰탕에 한 알 깨어넣고 쇠고기랑 같이 먹으면 잘 먹었다라는 생각이 들었겠죠. 그것이 전통이 되어서 지금까지 계속되는 겁니다."
- 허영만, 『식객』 제1권 제4화 "36, 2, 0, 60", pp.168-169, 동아일보사/김영사
물산이 풍부했던 조선팔도였지만, 역사의 숱한 질곡 탓으로 육식을 넉넉하게 할 수 없었던 백성들은 이처럼 꾀를 내어 어떻게든 보신을 했던 것입니다. 있는 집 사람들은 갈비 굽고 신선로에 탕 만들어 먹었지만, 어쨌든 서민들 또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육기를 섭취했습니다. 위에 쓴 곰탕이나 설렁탕, 국밥, 육개장, 잔치국수, 중국에서 건너온 만두까지. 생각해보니 피자의 기원도 밀가루반죽에 이것저것 다 올려놓고 오븐에 구워낸 게 시초니까 이런 경향은 어느 나라나 다 비슷한 것 같네요. 근래의 사례로는 일본의 돈까스, 카레라이스, 고로케(크로켓)도 같은 맥락. (관련 포스팅: 고기감자조림과 카레라이스 - 그녀의 요리에서 군대의 향취를 느끼다.)
냉면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탄생하게 된 음식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봅니다. 고기는 먹어야겠는데 양은 모자라고 하니 뭘 더 넣어먹어야겠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먹던 사람들입니다. 19세기 서양사람들 기록을 봐도 콜레라나 역병으로 죽었으면 죽었지 굶어죽진 않더라는 기록도 있고, 당장 전통 놋그릇 크기만 봐도 요즘 흔히 보는 도자기 밥그릇이나 쇠밥공기와는 차원이 다르게 큽니다. (대신에 옛날사람들은 주전부리를 잘 안 하죠. 지금 북한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많이 먹다 보니 뭔가 양은 불려야겠고, 주위를 둘러보니 땅심 안 가리고 잘 자라는 지천에 깔린 식물이 메밀이고, 메밀로 면을 잔뜩 만들어 말아 먹으니, 동치미 한 조각이랑 와삭와삭 씹어먹으니 이게 또 별미인거라. 거기에 영양보충 삼아 삶은계란 하나 올려주면 완벽.
메밀은 원래 몽고군의 침략 때 전래되었다고 하는데, 이 메밀이란 놈이 아무데나 대충 심어놓으면 잘 자랍니다. 냉면의 지역적 선입견으로 인해 북쪽 지방에서나 자랄 거라고 얼핏 생각할 수 있지만, 좀 달리 생각해보면 메밀국수(소바)를 사시사철 즐기는 일본은 한반도보다 훨씬 위도가 낮죠. 또 황인경씨의 소설 『목민심서』에도 보면 유배 간 정약용이 관아에서 억울하게 치도곤을 맞고 장독이 올라 끙끙대는 걸 덕보 영감이 메밀떡을 만들어 치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시기에 어디 가서 모밀을 구한다요." "아 집 뒤에 숭궈놓은(심어놓은) 모밀이라도 비어와야제!" 이 소설의 무대가 된 곳은 당연히 전라남도 강진입니다. 즉 메밀은 꼭 고구마나 마늘쫑 심어놓듯 그냥 척박한 땅에 대충 심어놓고 나중에 걷어먹는 그런 작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메밀이 유명한 평창 봉평이 심심산골이란 점을 생각해봅시다.
그러니 평안도에서 발달한 이 평양냉면이란 음식에 메밀이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일 것이고, 거꾸로 뒤집어보면 함흥 지방에서 발달한 함흥냉면에 메밀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함흥평야에 천지에 널린 게 밀이고 감자인데 메밀을 따로 심을 필요없이 감자 전분으로 만든 쫄깃한 면이 발달을 했겠지요. 강원도의 올갱이국수도 비슷한 이유로 발달한 음식이지 싶지만, 올갱이국수는 고기를 잘 사용하지 않고 어떤 맥락에서는 냉면보다는 수제비같은 음식이죠. 이를테면 음식의 발달 이유라는 것은 우리의 생활사나 주거환경, 경제적 사정 등 삶 자체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정리하자면, 냉면의 사전적 정의를 내리자면 "고기를 우려낸 육수를 기본으로 한 차가운 국물에 메밀이나 전분으로 만든 면을 말아 먹는 서민의 음식" 이겠지요. (그러면 설렁탕은 뭐냐? 소면 안 들어갔냐? 할지도 모르겠지만 설렁탕은 고기가 메인이지 소면이 주재료가 아니잖아요. 게다가 펄펄 끓여 내고.)
일단 이렇게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 놓고, 다음 시간에는 왜 하필이면 냉면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는가라든가 냉면 가격이 비싸다는 것은 편견이란 이유 등을 한 번 써 보겠습니다. (시험 사흘 놔두고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 쿨럭)
# by | 2008/02/24 12:20 | 냉면사전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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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ZOON// 700제 답쳐놓은거 그냥 답안째로 외우고 있는데 쓰러지지가 않아요 OTL
단양군// 흐흐 냉면이야말로 한국인의 영혼이죠
Niche// 너도 한우고기에 대해 한번 써봐(....)
아르// 흥
서산돼지// 아무데나 심어놓아도 잘 클 테니까요... 경상도 쪽에서는 아무래도 고구마와 겉보리가 주였지만요.
진서아빠// 도움이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혹은 오류가 있을까 좀 걱정도 되네요.
물산이 풍부하던 평양에서 기생질을 한 다음날 기생집에서 먹던 고급 속풀이음식이란 설도 있습니다.
아마 둘다 맞겠지 싶은데, 각각의 원형의 맛은 추정할 길이 없다고 봅니다.
요새 밀면 맛있는곳 탐방을 하고 있어요 ;ㅅ; 여름까지 원없이 퍼먹고(?) 가야지...
quentin// ㅎㅎㅎㅎ
시아리스// 아아... 밀면... (츄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