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을 포기해야 하나...

요즘 진지하게 사법시험을 포기할까 생각하고 있다.

라드브루흐는 법학도의 유형에 대해 세 가지로 분류했다. 이를 고전적 분류라고 일단 해두자. 최종고 교수가 이걸 한글로 옮겨놓았는데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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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부류는 학문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남들이 법을 공부하면 결코 손해는 안 된다고 말하는 바람에 지망해 온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로마시대부터 내려오는 격언인 "유스티니아누스가 명예를 준다(Dat Justinianus Honores!)"는 유혹에 이끌려 '빵을 위한 학문(Brotwissenschaft)'으로 법학을 선택한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별로 기대할 바가 못 되며, 이들이 설령 법률가가 된다고 해도 국민 생활에 손해를 끼쳤으면 끼쳤지 이익을 주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오늘날의 시대는 더 이상 이러한 자들을 법률가로 받아들이기를 환영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두 번째 부류는 지식만 발달하고 인격성이 부족한 젊은이다. 이들은 대개 중등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나타낸 우등생들로서 부모의 권유 등에 따라 법과에 대한 선악을 가리지 않고 법과가 좋다니 당연히(?) 들어온 자들이다. 법학도가 된 그들은 실제적 흥미로 방해받지 않고 냉정하고 논리적인 성격 때문에 우수한 성적을 유지한다. 이들은 법학자가 되든 법률실무자가 되든 대체로 유능하다는 평을 받는다. 법률가의 과제가 매우 형식적이고 별다른 창조성을 요구하지 않는 한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전형적인 법률가'라고 해도 잘못은 아니겠다.

그런데 라드브루흐에 따르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세 번째 부류가 있다. 그들은 강렬하고도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철학, 예술 혹은 사회와 인도주의(Humanismus)에 기울어지면서도 외부사정 때문에 부득이 법학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이다. 예를 들면 가난하여 저술가나 학자와 같은 불안정한 생로를 선택할 수 없었거나 혹은 예술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을 가지고 있지만 창작활동에 뛰어들 수 없는 자들이다. 이들은 당분간 법학을 선택하면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시간과 정력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틈을 이용하여 자기 본래의 취미방면에 정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법학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고 때로는 도중에 포기하고 마는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끝까지 법학을 공부하고 나면 누구보다도 훌륭한 법학자와 법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독일에서만이 아니고 한국에서도 대체로 경험상 들어맞는 사실이라고 생각되며, 자신의 법학에 대한 기대와 결부시켜 자문해 봄직한 문제설정이라고 여겨진다. (후략)


나는 머리가 좋지 않은 편이다. 사실 머리라기보다는 요령이 지독히도 없는 케이스라 해야겠는데 (누군가 가로되, 네놈은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봐야 알 놈이다.) 뭐 요령이든 지식이든 지혜든 전부 우리나라 사람들 표현으로는 머리라고 하더라. 소위 말하는 눈치는 쥐똥때까리만큼도 없고 대가리 티미한 새끼. 그러므로 나는 일단 두 번째 부류는 형식요건부터가 아니다. 우리집은 부자도 아니었고 높은 계급이지도 않았다. 부모 직업을 잘 타고난 덕에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는 것만이 큰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처음 이 길에 들어섰을 때는 큰외숙부님이 명절날 '우리 집안에도 법학자가 한 명 있어야 하지 않겠냐?' 라는 얘기에 지망을 했으니 첫 번째 부류처럼 동기유발이 되었을 수 있다. 솔직히 내게는 그게 복음같은 말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결코 의심해보지 않았던 이공계로의 진학을, 개차반이 된 수학점수 때문에 포기하고 인생도 포기한 채 3년을 보냈다. 다행히 문과쪽 적성검사 결과는 높은 편이었다. 어문학 99, 법학 98. 상경계열 96. 오히려 이공계가 88인가로 낮게 나왔다. 어쨌든 커서는 천문학이나 지구과학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장래의 꿈은 그 때 이미 버렸다.

대학 와서는 세 번째 부류처럼 살고자 했다. 대단히 고매하고 저명한 법학자가 수백 년 전에 저 말을 했고 지금까지도 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니 그게 진리라고 믿었다. 물론 나는 아직도 법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저 세 번째 유형이 정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려 하고 쳐다보려 하니 오히려 담론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조명할 수가 없었다. 인간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정의와 불의는 하나의 잣대로 꿰어지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식적 잣대를 버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내게 일제히 비난을 가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매장하거나 죽이려고까지 했다. 내가 꼭 세 번째 유형의 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하던 놈은 어느 날 갑자기 길에서 만나도 아는 척도 하지 말라고 욕을 해댔다. 황당했다. 세상은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목숨까지도 요구했다. 또한 그 양심의 자유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머리에 붉은 수건을 동여매고 나를 공격했다. 그들에게는 그들과 같은 생각만이 양심의 자유였고, 다른 시각을 요구하는 자들은 자본과 권력의 개라고 멋대로 치부하고, 공격하고, 효과적으로 비난했다. 이제 나는 글을 길게 쓰는 것이 무섭다.

한편 길게 글을 쓰는 사람들 - 이글루스에 보면 좋은 이웃들이 많이 있는데 개중에는 동생뻘들도 있다. 그 중에는 아직은 설익었지만 인상적인 재능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걱정이 된다. 나중에 보면 자신의 글이 매우 부끄러워질텐데... 하고. 그런 식으로 나는 내 지나온 삶이 부끄럽다. 하지만 그 때도 나이고 지금도 나이기 때문에 부정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책임은 져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를 그만두고 사진으로 전향했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가치는 어느 정도 꾸밈과 왜곡을 해도 본질이 오해당하는 경우는 적었다. 눈으로 들어오는 것은 색조를 바꾸고 빛을 조절해도 적어도 저기 지나가는 게 버스인지 기차인지 비행기인지는 구분한다. 가끔은 사람의 눈이 담지 못하는 것을 렌즈가 담을 때도 있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다 보니 내가 과연 사법시험을 할 자격이 있는 놈인가 생각을 한다. 나는 생각하기를 그만둔 놈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날이 갈수록 직관적으로 판단하게 되고 그에 대한 확신도 나날이 높아가지만 그 타당성을 남에게 언어로 이해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나날이 잃어가고 있다. 내 지식이 쌓여갈수록, 내 생각을 연마할수록 예전에 친했던 사람이 내게 돌을 던진다. 나는 참기 힘들다. 똘레랑스를 주장하는 놈들일수록 남의 등 뒤에 칼을 멋지게 꽂는다는 사실에 사는 게 무섭다. 이런 놈이 어떻게 남의 범죄사실을 다루고, 법률관계의 분쟁을 이해하여 조절하는 일에 종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언젠가 이글루스의 모 님이 나한테 넘겨준 명함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오늘도 마음을 다잡기는 하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 명함에는 뉴욕주 변호사라고 써 있다. 솔직히 말해 내게 주어진 가족의 부양의무가 아니라면 그냥 인생 자체를 버리고 싶은 생각뿐이다. 죽지 못해 산다.

by 스칼렛 | 2008/02/02 08:41 | 단상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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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그란덴 at 2008/02/02 09:48
자신이 정한것에 대해서 어떤 동기로 시작했든 어떤 경위로 가게 되었든 아직 그것에 대해서 한가닥 가진 철학이 있으시다면 걷기를 권합니다. 어린 녀석이 무책임하게 권하는 말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법학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고뇌하신다면 그쪽에 가진 비전이 결코 스칼렛님의 삶에서 헛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아마란스 at 2008/02/02 10:17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과연 옳은가 하는 이야기는 충분히 고민해보셔야할 문제지요.
그것이 남이 어떻게 말하든 남들은 어떻든간에 스칼렛님이 고민하시고 결정하신거라면 믿고 나아가셔도 될겁니다.
좋은 결정을 내리시고 좋은 결과가 나오길 빌겠습니다.
Commented at 2008/02/02 10: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마나™ at 2008/02/02 10:42
넌 좀 보기 싫은 세상의 모습은 관심 좀 끊고 보고 싶어하는 것들에 좀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것 같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기에도 벅찬 세상이야.
Commented by 칼리냥 at 2008/02/02 13:24
남이야 뭐라 지랄하든 말든... 남 인생에 폐 끼치지만 않으면 돼.
솔직히 너 왜 그딴 식으로 생겨먹었니, 라는 택흘에 일일히 반응하기도 피곤하다구.

지가 낳아준 부모도 아닌데 왜 남 생겨먹은 거에 택흘이야.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렇게 살다 가는 거지 뭐.
하지만 정말 남들이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 라고 할 땐 뭔가 아닌 게 있으니까 한번쯤 생각은 해보는 게 좋아.
뭐 그래도 난 내 스타일로 살겠어, 하고 결정했으면 남이 개거품 물고 지랄발광을 하든 칼춤을 추든 생까라구 ㅋㅋ
Commented by Dataman at 2008/02/02 15:53
도움이 되지는 못할 말이겠지만... 어제 면접하러 간 기업의 인사직원이 법대 출신이더군요.

법대는 사실상 독점적인 진로가 전공자 공급에 비해 상당히 좁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많이들 하게 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긁적 at 2008/02/02 16:58
사람 사는게 다 그렇지요. 아시잖아요?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행동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작자들은 애당초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나약해 빠진 소리 그만두고 합격증을 보여주세요.
Commented by 흑염패아르 at 2008/02/02 19:31
비슷...한건가? 헤...
같이...서로 힘내자. ^^
Commented by 스칼렛 at 2008/02/04 00:20
가끔 돌아오는 찌질열폭의 시간(....)
Commented by 택씨 at 2008/02/04 12:14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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