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02일
사법시험을 포기해야 하나...
요즘 진지하게 사법시험을 포기할까 생각하고 있다.
라드브루흐는 법학도의 유형에 대해 세 가지로 분류했다. 이를 고전적 분류라고 일단 해두자. 최종고 교수가 이걸 한글로 옮겨놓았는데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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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리가 좋지 않은 편이다. 사실 머리라기보다는 요령이 지독히도 없는 케이스라 해야겠는데 (누군가 가로되, 네놈은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봐야 알 놈이다.) 뭐 요령이든 지식이든 지혜든 전부 우리나라 사람들 표현으로는 머리라고 하더라. 소위 말하는 눈치는 쥐똥때까리만큼도 없고 대가리 티미한 새끼. 그러므로 나는 일단 두 번째 부류는 형식요건부터가 아니다. 우리집은 부자도 아니었고 높은 계급이지도 않았다. 부모 직업을 잘 타고난 덕에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는 것만이 큰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처음 이 길에 들어섰을 때는 큰외숙부님이 명절날 '우리 집안에도 법학자가 한 명 있어야 하지 않겠냐?' 라는 얘기에 지망을 했으니 첫 번째 부류처럼 동기유발이 되었을 수 있다. 솔직히 내게는 그게 복음같은 말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결코 의심해보지 않았던 이공계로의 진학을, 개차반이 된 수학점수 때문에 포기하고 인생도 포기한 채 3년을 보냈다. 다행히 문과쪽 적성검사 결과는 높은 편이었다. 어문학 99, 법학 98. 상경계열 96. 오히려 이공계가 88인가로 낮게 나왔다. 어쨌든 커서는 천문학이나 지구과학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장래의 꿈은 그 때 이미 버렸다.
대학 와서는 세 번째 부류처럼 살고자 했다. 대단히 고매하고 저명한 법학자가 수백 년 전에 저 말을 했고 지금까지도 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니 그게 진리라고 믿었다. 물론 나는 아직도 법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저 세 번째 유형이 정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려 하고 쳐다보려 하니 오히려 담론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조명할 수가 없었다. 인간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정의와 불의는 하나의 잣대로 꿰어지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식적 잣대를 버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내게 일제히 비난을 가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매장하거나 죽이려고까지 했다. 내가 꼭 세 번째 유형의 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하던 놈은 어느 날 갑자기 길에서 만나도 아는 척도 하지 말라고 욕을 해댔다. 황당했다. 세상은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목숨까지도 요구했다. 또한 그 양심의 자유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머리에 붉은 수건을 동여매고 나를 공격했다. 그들에게는 그들과 같은 생각만이 양심의 자유였고, 다른 시각을 요구하는 자들은 자본과 권력의 개라고 멋대로 치부하고, 공격하고, 효과적으로 비난했다. 이제 나는 글을 길게 쓰는 것이 무섭다.
한편 길게 글을 쓰는 사람들 - 이글루스에 보면 좋은 이웃들이 많이 있는데 개중에는 동생뻘들도 있다. 그 중에는 아직은 설익었지만 인상적인 재능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걱정이 된다. 나중에 보면 자신의 글이 매우 부끄러워질텐데... 하고. 그런 식으로 나는 내 지나온 삶이 부끄럽다. 하지만 그 때도 나이고 지금도 나이기 때문에 부정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책임은 져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를 그만두고 사진으로 전향했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가치는 어느 정도 꾸밈과 왜곡을 해도 본질이 오해당하는 경우는 적었다. 눈으로 들어오는 것은 색조를 바꾸고 빛을 조절해도 적어도 저기 지나가는 게 버스인지 기차인지 비행기인지는 구분한다. 가끔은 사람의 눈이 담지 못하는 것을 렌즈가 담을 때도 있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다 보니 내가 과연 사법시험을 할 자격이 있는 놈인가 생각을 한다. 나는 생각하기를 그만둔 놈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날이 갈수록 직관적으로 판단하게 되고 그에 대한 확신도 나날이 높아가지만 그 타당성을 남에게 언어로 이해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나날이 잃어가고 있다. 내 지식이 쌓여갈수록, 내 생각을 연마할수록 예전에 친했던 사람이 내게 돌을 던진다. 나는 참기 힘들다. 똘레랑스를 주장하는 놈들일수록 남의 등 뒤에 칼을 멋지게 꽂는다는 사실에 사는 게 무섭다. 이런 놈이 어떻게 남의 범죄사실을 다루고, 법률관계의 분쟁을 이해하여 조절하는 일에 종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언젠가 이글루스의 모 님이 나한테 넘겨준 명함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오늘도 마음을 다잡기는 하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 명함에는 뉴욕주 변호사라고 써 있다. 솔직히 말해 내게 주어진 가족의 부양의무가 아니라면 그냥 인생 자체를 버리고 싶은 생각뿐이다. 죽지 못해 산다.
라드브루흐는 법학도의 유형에 대해 세 가지로 분류했다. 이를 고전적 분류라고 일단 해두자. 최종고 교수가 이걸 한글로 옮겨놓았는데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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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리가 좋지 않은 편이다. 사실 머리라기보다는 요령이 지독히도 없는 케이스라 해야겠는데 (누군가 가로되, 네놈은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봐야 알 놈이다.) 뭐 요령이든 지식이든 지혜든 전부 우리나라 사람들 표현으로는 머리라고 하더라. 소위 말하는 눈치는 쥐똥때까리만큼도 없고 대가리 티미한 새끼. 그러므로 나는 일단 두 번째 부류는 형식요건부터가 아니다. 우리집은 부자도 아니었고 높은 계급이지도 않았다. 부모 직업을 잘 타고난 덕에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는 것만이 큰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처음 이 길에 들어섰을 때는 큰외숙부님이 명절날 '우리 집안에도 법학자가 한 명 있어야 하지 않겠냐?' 라는 얘기에 지망을 했으니 첫 번째 부류처럼 동기유발이 되었을 수 있다. 솔직히 내게는 그게 복음같은 말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결코 의심해보지 않았던 이공계로의 진학을, 개차반이 된 수학점수 때문에 포기하고 인생도 포기한 채 3년을 보냈다. 다행히 문과쪽 적성검사 결과는 높은 편이었다. 어문학 99, 법학 98. 상경계열 96. 오히려 이공계가 88인가로 낮게 나왔다. 어쨌든 커서는 천문학이나 지구과학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장래의 꿈은 그 때 이미 버렸다.
대학 와서는 세 번째 부류처럼 살고자 했다. 대단히 고매하고 저명한 법학자가 수백 년 전에 저 말을 했고 지금까지도 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니 그게 진리라고 믿었다. 물론 나는 아직도 법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저 세 번째 유형이 정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려 하고 쳐다보려 하니 오히려 담론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조명할 수가 없었다. 인간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정의와 불의는 하나의 잣대로 꿰어지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식적 잣대를 버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내게 일제히 비난을 가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매장하거나 죽이려고까지 했다. 내가 꼭 세 번째 유형의 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하던 놈은 어느 날 갑자기 길에서 만나도 아는 척도 하지 말라고 욕을 해댔다. 황당했다. 세상은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목숨까지도 요구했다. 또한 그 양심의 자유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머리에 붉은 수건을 동여매고 나를 공격했다. 그들에게는 그들과 같은 생각만이 양심의 자유였고, 다른 시각을 요구하는 자들은 자본과 권력의 개라고 멋대로 치부하고, 공격하고, 효과적으로 비난했다. 이제 나는 글을 길게 쓰는 것이 무섭다.
한편 길게 글을 쓰는 사람들 - 이글루스에 보면 좋은 이웃들이 많이 있는데 개중에는 동생뻘들도 있다. 그 중에는 아직은 설익었지만 인상적인 재능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걱정이 된다. 나중에 보면 자신의 글이 매우 부끄러워질텐데... 하고. 그런 식으로 나는 내 지나온 삶이 부끄럽다. 하지만 그 때도 나이고 지금도 나이기 때문에 부정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책임은 져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를 그만두고 사진으로 전향했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가치는 어느 정도 꾸밈과 왜곡을 해도 본질이 오해당하는 경우는 적었다. 눈으로 들어오는 것은 색조를 바꾸고 빛을 조절해도 적어도 저기 지나가는 게 버스인지 기차인지 비행기인지는 구분한다. 가끔은 사람의 눈이 담지 못하는 것을 렌즈가 담을 때도 있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다 보니 내가 과연 사법시험을 할 자격이 있는 놈인가 생각을 한다. 나는 생각하기를 그만둔 놈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날이 갈수록 직관적으로 판단하게 되고 그에 대한 확신도 나날이 높아가지만 그 타당성을 남에게 언어로 이해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나날이 잃어가고 있다. 내 지식이 쌓여갈수록, 내 생각을 연마할수록 예전에 친했던 사람이 내게 돌을 던진다. 나는 참기 힘들다. 똘레랑스를 주장하는 놈들일수록 남의 등 뒤에 칼을 멋지게 꽂는다는 사실에 사는 게 무섭다. 이런 놈이 어떻게 남의 범죄사실을 다루고, 법률관계의 분쟁을 이해하여 조절하는 일에 종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언젠가 이글루스의 모 님이 나한테 넘겨준 명함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오늘도 마음을 다잡기는 하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 명함에는 뉴욕주 변호사라고 써 있다. 솔직히 말해 내게 주어진 가족의 부양의무가 아니라면 그냥 인생 자체를 버리고 싶은 생각뿐이다. 죽지 못해 산다.
# by | 2008/02/02 08:41 | 단상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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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남이 어떻게 말하든 남들은 어떻든간에 스칼렛님이 고민하시고 결정하신거라면 믿고 나아가셔도 될겁니다.
좋은 결정을 내리시고 좋은 결과가 나오길 빌겠습니다.
솔직히 너 왜 그딴 식으로 생겨먹었니, 라는 택흘에 일일히 반응하기도 피곤하다구.
지가 낳아준 부모도 아닌데 왜 남 생겨먹은 거에 택흘이야.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렇게 살다 가는 거지 뭐.
하지만 정말 남들이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 라고 할 땐 뭔가 아닌 게 있으니까 한번쯤 생각은 해보는 게 좋아.
뭐 그래도 난 내 스타일로 살겠어, 하고 결정했으면 남이 개거품 물고 지랄발광을 하든 칼춤을 추든 생까라구 ㅋㅋ
법대는 사실상 독점적인 진로가 전공자 공급에 비해 상당히 좁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많이들 하게 될 것 같습니다.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행동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작자들은 애당초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나약해 빠진 소리 그만두고 합격증을 보여주세요.
같이...서로 힘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