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는 뇨구맘 먹는 한국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얼마 전 일요일 저녁에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웬 귀화한 며느리들이 TV에 나오는 것을 보았다. <사돈 처음뵙겠습니다>라는 이름의 코너였다. 보아하니 SBS의 예능국에서 옛날에 '좋은세상만들기'와 비슷한 농촌 버라이어티(?)를 만든 듯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코너가 당시 그 영상편지 PD의 컴백 작품이란다.) 어쨌든 멀리 타지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사람들이 고단한 삶에 고향 한 번 가 보지도 못하고, 결혼까지 했으면서도 사돈 상견례도 못하는 등 이래저래 안타까운 사연이 많으니까 외국에 있는 사돈 내외를 모셔와서 한국 시댁과 상견례하고 잔치상을 차려주는 프로그램인 듯했다.

귀화인 며느리들은 하나같이 카메라 앞에서 순박한 미소를 지었지만 자신의 고향으로 보내는 영상편지를 찍을 때는 하나같이 펑펑 울었다. 그리고 스튜디오에 친정 식구들을 모셔와서 상봉했을 때도 어김없이 펑펑 울었다. 진행을 보던 남희석씨도 한영씨도 울고 같이 출연한 동네 사람들도 울고, 그 프로그램을 취재 온 베트남 국영방송 진행자도 울고. 고장난 수도꼭지마냥 모든 사람들(심지어 스태프와 통역까지)이 펑펑 울었다. 시집살이가 원래 고되고, 시집온 곳이 대부분 살림 넉넉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건 일년 내도록 짜다라 많은 농촌이니 그 고단함도 있을 거고, 무엇보다도 낯선 땅에서 적응안되는 환경 - 날씨도 음식도 생활방식도 - 과 사실상 생이별해버린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것 때문에 얼마나 설움에 겨웠을까. 나중에 다시보기로 찾아봐도 한 사람이라도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장면을 보다가 옛날에 25년 전 한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한 특집 프로그램 - KBS 이산가족찾기를 떠올렸다. 사실 내가 너무 어린 시절 일이라 이 방송이 별로 기억에 없지만, 아주 흐릿하게 단편적으로 장면장면은 생각이 난다. 지금의 미려한 고딕체가 아니라 약간 코믹하게 찌그러진 KBS의 로고, 그리고 "언니, 왜 그때 찾지 않았어, 왜 찾지 않았어."하고 중년의 아주머니의 기억. 그녀는 오열을 터뜨렸고 그 때 사회 보던 아나운서부터 스태프, 모든 방청객들이 전부 울음바다에 빠져 버렸다. 아직도 이 방송특집이 기록한 180일간 453시간 45분이라는 세계 최장 생방송 기록은 깨어지지 않았고, 동일시간대 78% 시청률 기록 또한 국내 단일 프로그램으로는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도 이 기록을 넘지는 못했다.)

그 날 식당에서 육개장 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쳐다본 TV에서는 25년 전 흐릿한 기억 속 그 당시와 똑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른 것이라면 그 안에 있는 민족이 서로 다르다라는 것 정도일까. 토종 한국인이건 배달민족이 아닌 한국인이건 똑같은 상황에서는 똑같이 감정에 북받쳐올라 울고 있었다. 피부색이 다르고 쓰는 말이 달라도 사람은 다 사람이라는 게 증명되던 순간이다.

숟가락 놓고, 아줌마한테 4500원을 주고 나와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해보니 작년에 만들어진 신조어로 '코시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 말을 들을 처음에는 '이노무 인간들은 즈그들하고 다르면 차별용어부터 만들어놓고 보냐' 라며 씁쓸해했다. 그런데 해가 바뀌어 저 방송을 보고, 또 이슬람 사원에 가서 이라크에서 온 이맘과 대화를 나누어 보고, 거리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귀화 한국인들을 볼 수 있게 되고 나니 - (오장동 갈비탕집에서 일하는 아줌마는 조선족 동포라 만다린어를 유창하게 하고, 동대문운동장 앞 분식집에서 밥먹고 있으면 웬 허여멀건한 러시아 언니가 어눌한 발음으로 아줌마 부대찌개요 하고 시킨다.) - 어쨌든 이 문제는 생각보다 중요한 사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특히 토종한국인과 귀화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의 정체성 문제는 지금 국가적으로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으면 상당히 나중에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전통적 한국인상에 편입시킬 수 있을까? 물론 국적은 한국인이고 거의 대부분 한국 농촌에서 자랐으니 생긴 것 빼고는 전부 한국사람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그런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말을 배워 베트남말도 유창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간장 대신 뇨구맘(어젓 간장)으로 맛을 내는 음식에도 익숙할지 모른다. 생일날 미역국과 국수를 먹여주는 게 아니라 뜨끈한 포(pho)를 먹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그는 전통적인 대한민국 구성원이 갖고 있는 문화와 베트남 민족이 갖는 문화, 양쪽 모두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람인 것이다. (근데 북베트남에서도 뇨구맘을 쓰던가? 가물가물)

이제는 <한민족>이 아니라 <한국인>의 아젠다를 제시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귀화인 가족과 그 2세들은 모든 대한민국의 법적 권리의무의 주체인 완전한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숫적으로 소수의 자리에 있다. 게다가 아주 희귀한 것도 아니라 적당히 소수다. 즉 주변에서 흔히 볼 수는 있는, 기존의 한민족과 다른 한국인이 동네에 돌아다니는 것이다. 또한 그냥 다르다고 하면 모르겠는데 이들에게 강제되는 유형적, 무형적 폭력은 충분히 예상되는 바이다. 한국인들은 아직까지 여론에 우르르 몰려다니고 무조건적인 평등을 외치는, 이를테면 농촌공동체에서 보이는 전체주의적 속성이 의식 저변에서 살아숨쉰다고 생각되기에.... (아마, 다들 동의하실 듯?)

게다가 하필이면 이들 귀화인들 중 대부분은 사회 계층 스펙트럼을 죽 늘어놓았을 때 대부분 상대적으로 빈곤한 쪽에 포진해 있다. 보니까 자기하고는 좀 달라. 그런데 돈도 없어. 그러니 힘도 없어. 딱 국가적인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에 좋은, 이를테면 파시즘의 희생양이 되기에 좋은 포지션인 것이다. (이딴식의 파시즘보다는 차라리 전두환의 쓰리에스 정책이 백만 배 낫다고 생각한다.)

그냥 국가적으로 아젠다를 제시하지 않고 가만히 흘러가게 놔두는 것도 한 방법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필시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올 것이라고 예상이 된다. 기독교와 무슬림이 6:5로 권력을 나눠가진 중동의 파리 레바논이 팔레스타인 난민이 유입되며 나라가 어떻게 개판오분전이 되었나 생각해보면.... (물론 난민은 이스라엘 탓이다.) 아니, 당장 1억 2천만 전체 인구 중 꼴랑 24만명인 재일동포들을 일본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해 얼마나 지랄맞은 부작용이 있는지 옆 나라를 보고 배울 수 있지 않겠는가.

나라는 인간이 워낙에 단순무식해서 계속 말이 중언부언하는데, 이를테면 이제 <한국인>이란 어떤 개념인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나아가 국가 시스템 차원에서 정립하고 논의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최근의 국기에 대한 맹세 개정은 아마 그러한 맥락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례로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이 이제 이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는데 (일부는 이미 입학했다) 사범대학의 고등교육과정에서는 이들 다민족문화에 대하여 피상적인 고찰 수준 이상의 뭔가 확고한 프로세스로 교육인력을 길러내는 시도라도 했는가?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어쨌든 내가 이런 생각을 하든 말든 육개장 국물은 짜게 식었고, 조선족 식당 아줌마는 주인 아줌마 대신 나한테서 4500원을 받아 챙겼다.

by 스칼렛 | 2008/01/11 07:34 | 단상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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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사바욘의_단_울휀스 at 2008/01/11 08:42
시도를 하더라도 그것이 보편적인 인식이 되려면 또 강산이 몇번 혹은 몇십번을 바뀌어야하겠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페이퍼 at 2008/01/11 09:42
이미 카운트다운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다인종, 다민족이란 게 말만 쉽지 그 어떤 나라도 쉽게 개념정립을 할 수 있는게 아니거든요. 일례로 모범적인 다민족 국가라는 미국도 실상은 문제를 덮고만 있을뿐 근본적인 인종, 민족간 통합은 여전히 요원한 일이며, 똘레랑스의 나라라던 프랑스도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족간의 이상적인 통합은 결국 실패로 흘러갔고 요즘엔 이주민들 내쫓자는 보수우익쪽에 힘이 실리고 있거든요. 또한 중국도 다민족 국가라고 하지만 그건 구호일뿐 실상은 한족에 의한 소수부족의 흡수통합으로 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 각지역의 소수부족들은 자신들을 '곧 사라질 민족'이라고 부를 정도니까요. 경제, 정치, 사회의식 등등에서 한참 앞서있는 선진국들도 골치를 앓고 있는 이 문제를 한국이 해결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아니 어쩌면 그 많은 인종과 민족들의 피가 다 섞이고 섞여서 서로 평균적으로 비슷비슷해져서 누가 어느 인종인지 쉽게 구분이 안될때까지 진정한 해결책이란건 애초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다인종에서 오는 무질서와 혼란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긁적 at 2008/01/11 09:57
농촌에서 보이는 전체주의적 속성. 절대 동의합니다. -_-;;;;;
이글루스도 예외는 아닌듯.
Commented at 2008/01/11 12:5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8/01/11 13:00
지방으로 여행이나 일을 나갈 때 마다 어눌한 한국말을 쓰는 한국인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중 입니다. 나름대로 여러가지 대책을 세운다고는 하지만 현재의 상태가 계속되면 20년 뒤에는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지요.
Commented by 슈지 at 2008/01/11 14:02
언제까지 단일민족이라는 허상 속에서 우리들만 뭉쳐서 살 수 있는가 한번 두고봐야죠. 그리고 은근히 귀화한 사람들 중에서도 사람 대하는 게 차이가 있구요. -예를 들어서 귀화한 백인과 귀화한 흑인 대하는 건 차이가 있죠- 어느 분 작품 제목처럼 '그들만의 천국'으로 변하는 걸 보기 전에 제가 먼저 이곳을 떠날 확률도 높군요.
Commented by dunkbear at 2008/01/11 15:52
전체주의적 속성이 어디 농촌 뿐이겠습니까.... 웬만한 곳에는 거의다 뿌리내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똘레랑스는 허상이었죠. 오히려 아메리카 드림보다도 더 위선적인 개념일지도
모릅니다. 2차 대전 이후에 다른 국가의 식민지들이 차례로 독립하는 가운데서 자기 식민지만
내주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베트남에서 쪽팔리게 패하고 그것도 모자라 미국까지 끌어들였었죠.
그나마 미국은 이제 흑인 아니면 여성 대통령의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지만 과연 프랑스는...
Commented by 흑염패아르 at 2008/01/11 17:46
촌동네라던 곳에서도 다른 나라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는데 뭘.
그런데 우리나라는 저런데 있어 대책같은거 마련하는게 너무 너무 느려. 만날 뒷북만 치고 무슨 사건이 크게 터져줘야 그제서야 부랴부랴...
Commented by 스칼렛 at 2008/01/11 23:22
사바욘의_단_울휀스// 프로세싱으로 조지면 유형으로 남는 게 그나마 있긴 하죠. <- 이건 또 이거대로 안습이겠지만...
페이퍼// 그게 소수의 멸종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이 나라에서는 제대로 파이어스타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니까요.
긁적// 위컴 사령관... (이하생략) 일지도요.
비공개// 사실 그 말로는 공존을 하자고 떠드는 사람들도 실상은 내가 권력을 잡을테니 너 고이 목내놓고 죽어라. 라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자기편이 아니면 다 적이라서 무서운거죠, 이 나라는.
길잃은어린양// 게다가 집단구획의식은 강하고, 타집단의 경험이 적은 사실상 섬나라인 이 나라에서 "풍기는 체취부터 다른"(진짜 뭔가 알 수 없이 다릅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나 외국인보고 냄새나는 무엇무엇 이라고 하는듯) 사람들을 봤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슈지// 택시기사가 동료 기사에게 "연탄 두 장 싣고 서울역까지 간다"고 말하니까 흑인 병사 두 명이 진짜 딸랑 400원만 내고 내렸다는 일화도 있지요...
dunkbear// 사실 한국만의 미덕은 아닌데 우리나라에서 저게 의식 저변에 깔려있는 건 부정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르// 난 밀양에서 옥포 찾아가는 베트남 여자랑 얘기하면서 서울 올라온 적도 있지.... 대책이라, 공무원들은 문제점을 알아도 아마 국장급에서 움직이기 전엔 절대 나서지 않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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