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것의 자유

어디선가 새벽닭이 우짖었으면 좋겠지만 도회지의 새벽은 신문 돌리는 배달원의 스쿠터 소리조차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새벽 세 시에 문득 잠이 깨어 다시 생각에 잠기다가 문득 깨닫다. 포기하면 편하다. 기대하지 않으면 아플 일이 없다. 그것은 포기라고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욕심을 버리는 것을 두고 우리는 포기한다고 하지 않고 해탈이라고 표현한다.

간밤에 자다가 핸드폰 진동 소리에 깨어, 옛 남자를 잊지 못하는 친구의 전화를 받아 일방적으로 들어주다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다시 잠이 들었을 때, 그 친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짧으나마 정말로 기분좋은 꿈을 꾸었다. 십 년 전인지 십오 년 전인지, 나는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고 나는 내 뇌가 만들어 낸 환상 속에서나마 그리운 얼굴들을 많이 만났다. 꿈이 깨었을 때는 너무나 서운함에 눈물이 났다. 그녀의 '옛날에는 모두 좋았는데' 라는 한 마디의 말이 무의식 속에서 잠들어 있던 내 옛 기억을 다시 꺼내 펼쳐져 준 듯하다. 남의 불행으로 나는 기쁨을 맛보았다. 미안해해야 할까? 확실한 것은 의도하지 않은 영향에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옛 우리 집 언덕배기에 서 있던 당산나무처럼 우뚝 서 있고자 했고 사람들도 내게 그런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내 지난 몇 년간의 일천한 경험을 반추하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언제부터인가 남들이 다 누리는 것처럼 보였던 일상 속의 희노애락을 잡으려 했고 사람들은 그런 나를 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주변의 시선이 싫어서 괴로워했지만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벗어나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다른 존재에게 다가가는 순간 나는 내게 주어진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 된 것이었다. 계속 그 자리에 나무처럼 서 있기만 했다면 좋았을 텐데, 지나간 시간에 너무 후회가 많이 들어서 다시 쳐다보기 무섭다.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운명이라면 그것을 버리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해탈이다. 언제까지나 사람들에게 좋은 존재로 남도록 다시 노력해야 하겠다. 어차피 같은 곳을 향하여 빨리, 때로는 천천히 향하여 가는 것이 인생일 터이다.

by 스칼렛 | 2007/08/20 05:20 | 단상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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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7/08/20 10: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흑염패아르 at 2007/08/20 15:32
냠...님. 허락되지 않는 운명이라는거 정말 있을까?
넌 이미 널 아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좋은 존재라고 생각해 :D 기뻐하라구.
Commented by 스칼렛 at 2007/08/21 07:22
비공개// 단거 먹어도 이만 잘 닦으면 이빨 안 썩어요... :D
흑염패아르// 내가 찌질대는 게 하루이틀 일이냐 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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