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대학 다키가와 사건(1933) 3.일제 당국의 탄압

교토대학 다키가와 사건(1933) 2.사건의 단초가 된 중국 유학생 으로부터 이어서 계속.

* 일전에 얘기한 바 있는, 장경학(1916~) 교수님의 회고록에 실린 글입니다. 아직 회고록이 출판되지 않았기에 사실 굉장히 저어됩니다만, 쇼와 초기 학문자유에 대한 탄압의 상징인 다키가와사건에 대하여 국내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더군요. 또한 장 교수님은 교토대학 37학번으로 그 사건의 후폭풍을 직접 겪으신 몇 안되는 생존자이고, 본문에서 나오는 얘기지만 저 또한 그 역사적 의미가 중요하다고 생각되기에 일단 게재합니다. 일단은 비영리적 행위입니다만, 이 원고의 공개로 인하여 문제가 될 때에는 이 포스팅은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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刑法讀本의 分折

"범죄와 형벌은 모두 사회악이다. 헤겔에 의하면 범죄는 법의 부정이며, 형벌은 범죄의 부정이다. 법의 부정인 범죄를 다시 부정하여 법을 부활시키는 - 다시 말해 '법'과 '범죄'와 '형벌'과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인정하는 곳에서 헤겔의 죄형론이 성립한다.

헤겔의 죄형론은 칸트의 죄형론에 비교하여 볼 때 하나의 진보라고 생각된다. 칸트의 죄형론이 죄형의 사회적 성질을 간과하고 단지 범죄라는 악을 처리하기 위한 형벌이라는 악을 더하는 데 불과한 데 대하여, 헤겔은 죄형의 문화적 의의를 지적한 것이다. 그것은 칸트의 경우처럼 ‘범죄가 있으면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범죄에 의한 사회질서의 파괴가 형벌에 의하여 회복되는 경우에 비로소 죄형의 관계가 문화적 의의를 가지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전원일치에 의하여 사회를 해산하는 최후의 순간에 있어서도 형무소에 있는 사형범인은 한사람도 남기지 말고 죽여야 한다'고 하는 칸트에 대하여, 헤겔은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그에게 악을 가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명언한 곳에서 일견 (그의) 근대적 색채가 엿보인다." (刑法雜筆, 1937.9.14)


문부성은 대학을 탄압하여 반정부적인 언론을 봉쇄하려는 작전의 일환으로, 누구보다도 먼저 다키가와 교수를 1차적 희생양으로 지목하고, 그 물적 증거로서 그의 저서 「형법독본」을 면밀히 분석하였다.

1.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제 당국은 다키가와 교수가 “범죄는 사회의 산물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이유로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의 견해라고 단정했다. 특히 다키가와 교수가 “범죄의 대부분은 범인의 악성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조직이 나쁘다는 데 그 주된 원인이 있다. 형법은 근원적으로 범죄를 없애는 수단이 아니라 단지 범죄라는 사실이 외부에 나타나는 이유 때문에 범인에게 고통을 주어 그 보상을 요구하는 데 불과하다. 그러므로 범죄를 없애려면 범인에 대하여 형벌을 가하기보다는 범죄가 발생할 여지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 고 주장한 것을 두고 (사회를 비판하는) 위험한 사상이라고 비난하였다.

2. 당국은 다키가와 교수가 「형법독본」에서 간통죄 폐지를 주장한 것도 문제로 삼았다. 이 문제에 대하여 다키가와 교수는 중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과 같이 불벌주의를 채용할 것을 주장했으나, 공안당국은 '러시아에서 불벌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그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그가 마르크스주의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3. 또한 당국은 「형법독본」에서 내란죄 및 교육형에 관하여 해석한 부분도 문제삼았다. 이를테면 “형벌은 교육이다. 그렇지 않으면 형벌의 생존권은 없다.”고 하는 표어를 내걸고, (기존의 '처벌적 성격'의 형벌으로부터 보다 전향적인) 형벌사상의 방향전환을 꾀한 것이 이른바 '교육형주의'이다. 그에 따르면, 형벌의 목적은 범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범인의 반사회적 성격을 고쳐서 법질서에 복종하는 인간으로 개조하는 것이며, 이 때 형벌의 집행은 범인의 사회적 복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교수는 '교육적 의미의 형벌'은 무의미하다고 반박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교육'을 거절하는 범인이 있을 때는, 그에 대한 관계에서 교육형은 실패를 자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 이에 비해 사회복귀를 맹세하는 수감자에 대해서는 형벌의 교육효과가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나, 정작 사회가 그들의 사회복귀 요구에 응하지 못한다. 그들이 복귀해야 할 곳은 생활난에 허덕이며 실업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사회이다. 형벌로서 교화를 받아 석방되더라도 직장을 얻을 길이 없다. 결국 재범을 되풀이하여 금방 나온 감옥으로 교육을 받으려고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 그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삶의 길이다.

감옥에서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못한다.”는 원칙이 확립되어 있으며,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침실에서 같은 시간에만 잔다. 그곳은 이상 사회와 지극히 유사한 듯하다. 그러나 감옥 밖의 현실사회는 전혀 다른 조직으로 짜여져 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못한다.”고 하는 진리에 입각하여 살 수 있는 사회가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현재의 사회는 그러한 사회가 아니다. 옛날 동양의 사상가는 “형(形)은 형(刑)이 없기를 기약한다.”고 하는 이상(理想)을 선언했다. 그러나 형벌에 의해 형벌을 없애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것은 범죄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에 의해,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다키가와. 형법독본 p.192-196)

요컨대,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감옥에서 교육을 받고 전향하는 자는 정치범(확신범)의 가치가 없다는 것과, ▲교육형의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 범인이 생활난에 허덕이기는 사회에 복귀한다고 해도 다시 범죄를 범하여 감옥으로 가는 것이 전부라는 것, - 다시 말해 '교육형주의'는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토야마 문부대신은 이를 두고, 다키가와 교수가 “감옥이 이상 사회이다.” 라고 주장했다며 생트집을 잡으면서 비난공격을 가했다. (이상 다키가와, "격류(激流)" p.12이하에서 발췌. 1963, 出書房新社)

4. 당국은 다키가와의 존속살해죄에 대한 견해도 문제삼았다. 이에 대해서는 그의 책 「형법각론」에서 약간의 설명이 발견되는데, 그는 “존속살해죄는 가장에 대한 반역을 최악의 죄로 보는 봉건적 이데올로기의 잔영이다. 실제 문제로서 자손이 존속친을 죽이는 경우는 대개 포악무도(暴惡無道)한 존속친을 제거하여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부득이 범행하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미야모토[宮本英雄], "刑法學粹", 弘文堂書房 ,1930)
이 때 다키가와 교수는 "살인죄에 대해 형의 집행유예를 인정하는 형법이, 손바닥을 뒤집듯 (그 법적 태도를 바꾸어) 존속살해를 극히 중하게 처벌한다는 것은, 그 부조화가 너무 심하여 눈에 거슬린다"고 했다. (다키가와. 형법각론 弘文堂書房 1933 p.93)

* 위에서 언급한 미야모토 교수는 이 '교다이 사건'으로 다키가와 교수가 퇴임한 후 형법강의를 단독으로 담당하였다. 나는 그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주관주의 극우파로, 독특한 겸억(謙抑)주의를 주장하였다. 검사 출신임을 과장하기 위해서인지 근엄한 자세로 한 치 흐트러짐이 없이 150분 강의를 좌석에 앉은 채 변함없는 똑똑한 어조로, 독특한 학설을 종시일관 자신만만하게 해석했다.

(계속)

by 스칼렛 | 2007/07/20 03:31 | 퍼온글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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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死海文書 at 2007/07/20 10:55
아무리 봐도 당국의 해석이 기이하기만 합니다.
Commented by 안모군 at 2007/07/20 14:13
저런식으로 사람잡는거야 지금이나 예전이나 아주 흔하지요. 관제냐 민제냐의 차이 뿐이지, 발언이나 문구 몇 개 두고 사람 병신 만드는거야 금방이니까요.

사건이 오래되어서 그렇기야 하겠지만, 헤겔=맑스같은 부분이나, 19세기 스러운 형법론이 참 현재의 눈으로 보기에 민망스럽군요. 법률의 논쟁도 대세가 기존 우파의 설이 폐기 내지 수정된게 많다지만, 그 이전에 발언을 이유로 공안사범으로 몰아버린다는 것은 참 그 시대의 단면인 셈이겠죠.
Commented by 스칼렛 at 2007/07/20 22:28
그런 걸 대놓고 했다는 게, '일제'가 제대로 된 근대국가가 아니었다는 반증이겠죠.
Commented by francisco at 2007/07/20 23:11
다키가와 교수의 책을 한 번 꼭 읽어보고 싶어지는군요.
Commented by 스칼렛 at 2007/07/21 00:16
국내에 나와있을까는 모르겠습니다. 일본에는 다키가와나 가와카미 교수의 저작들은 이와나미 문고에서 간행된 것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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