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22일
초속 5cm

단편 애니메이션 '그와 그녀의 고양이'부터 근작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까지 매번 "원 맨 애니메이션"으로 세간의 화제를 몰고 다녔던 천재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이 대한민국에서 정식 개봉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초속 5cm - 이미 서브컬쳐계에서 익히 알려진 제목과 영문 부제 외에, 한국판에서는 '벚꽃잎이 떨어지는 속도'라는 한글 부제를 하나 더 달았다. 그리고 그 속도는, 아마도 너무나 느릿하게 진행되는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한 시간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신카이 마코토의 필모그래프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미려한 영상이다. 이전에는 '이러한 작업을 혼자 해 냈다'라는 점에서 찬사를 보냈지만, '구름의...'의 티저 트레일러 - 이 때부터 그는 스탭을 쓰기 시작했는데 동화보조, 음악, 그리고 프로듀서까지 스탭은 단 3명이었다 - 즈음부터, 나는 그 영상 자체의 유려함에 탄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제대로 분업화된 첫 작업인 이번 작품 - 그래봐야 대형 프로덕션의 TV 릴리즈 1화물보다도 적은 수의 스탭이다 - 에서 그는 그러한 그의 재능을 폭발시켰다, 라고 나는 평하겠다.
신카이 감독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차가 달리는 도시의 플랫폼부터 눈 덮인 설원까지 우리가 보는 풍경의 빛은 한 순간 한 순간이 모두 다르다. 그러한 정경의 변화를 그는 천재적인 영상미로 그려낸다. 솔직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벚꽃이 떨어지는 풍경, 설원을 달리는 급행전차, 그리고 검푸른 우주를 향하여 쏘아 올라가는 로켓의 궤적까지 -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침 대용으로 들고 들어간 핫도그가 스탭롤이 다 올라갈 때까지 한 입도 대지 않은 채 내 손에 그대로 들려 있었다.
영상미를 미려하게 그려내는 감수성이라는 것은, 감독이 말하는 영화의 내러티브 또한 그러한 감수성을 자아낸다는 뜻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작부터 줄기차게 이어져 온 그의 이야기 - 거대한 운명의 단절 속에서 멀어진 인연이 서로를 향함은, 사춘기에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아련함을 다시 기억속에서 꺼내어 간질인다. 그것은 어른, 혹은 곧 어른이 되려는 젊은이들을 위한 동화다. 세상의 파도를 알아갈 때쯤, 세상이라는 파도를 비로소 처음으로 탈 수 있었을 때 깨닫게 되는 감수성의 이야기다. (아마도 제2화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장치일 것이다)
또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상미를 말할 때에는, 미장센 내에서 영화적 장치로 기능하는 각종 소품이나 배경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그는 자신이 철도매니아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이 작품 속에서 전철은 매우 특유한 공간으로 자리한다. 총 3화의 옴니버스 구성으로 된 이 작품 속에서, 특히 제1화에서는 전철이라는 시스템은 운명 그 자체이다. 그것은 주인공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거대한 흐름이다. 하지만 결코 순탄하게 흘러가지도 않으며, 가끔 히로인이 겪는 다른 시간 속의 공간감 또한 전철 속에서 그려진다. 그리고 3화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하는 건널목 등 - 전철은, 단지 미장센으로서의 공간감만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 내에서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거역할 수 없는 무게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제1화의 내러티브에서 주인공의 안타까움에 어느덧 공감하고 있었다.
러닝타임만 제외하면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제1화에 이어, 제2화에서는 가고시마로 옮겨진 무대에 맞게 이러한 공간적 배경은 1화에 비해 비교적 넓어진다. 어딘가 '별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자연적인 공간감은, 그만큼 성장한 주인공의 시야를 대변하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가고시마의 원대한 자연이라는 이러한 도구를 통해, 감독은 자신이 표현해낼 수 있는 최대의 아름다움을 영상에 담아냈다. 재차 말하지만 그는 자연빛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최근 사진에 취미가 생기면서 이게 무슨 소리인지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고, 알면 알수록 신카이 감독의 표현력에 탄복하게 되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에필로그격으로 진행되는 제3화의 편집이다. 사운드에 약간의 장난질만 했어도 관객들이 갑자기 터져나오는 주제곡에 뜬금없어하진 않았을텐데 - 적어도 약 1초의 암전, 아니 무음 정도로만 편집했어도, '깨는' 느낌은 안 들었을거라는 생각이다. 1화가 본편, 2화는 속편, 3화는 에필로그처럼 진행되는 느낌에서 초반의 감수성을 제대로 끝맺지는 못했다는 느낌이다. 이건 아무래도 프로듀서의 고육지책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적어도 극장에 걸려면 러닝타임 1시간은 채워야 했을 테니까... (본 작품의 러닝타임은 총 62분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내재적 관점에 의한 감상은 관람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다만 내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아련한 감수성과 추억의 이미지를 관객은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 "가장 일본적인 문법의 영화", 아니 애니메이션에 의해서.
P.S.
'시간을 달리는 소녀' 못지 않게 음악이 좋았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도무지 OST에 대한 국내 정보가 없다;; 야후제팬이나 아마존에다 대고 물어봐야 하나? (.....)
# by | 2007/06/22 17:11 | 뇌내세척 | 트랙백(1) | 덧글(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초속5센티미터
신카이 마코토. 2000년 혼자의 힘으로 제작한 단편애니메이션『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와 2002년 공개한『별의 목소리』가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게 된 크리에이터입니다. 이번에 국내에서 개봉한『초속5센티미터』는 2004년에 공개된『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 이은 두번째 극장개봉작으로서, 제가 '감독이 누구다'라는 이유로 보는 거의 유일한 감독이 되겠습니다...^^; 일본어에는 せつない[切ない] 胸がしめつけられる思い......more
전체적인 감동이야 여전하지만 마지막 3화의 편집은 개인적으로는 좀 쌩뚱맞다고까지 느껴졌던 부분이었습니다..
이형진// 그렇군요. 쿨럭....-_-;
산왕// 전 OST가 고픕니다... 아아아.... (아, NHK 다큐멘터리 OST들도 질러야 하는데!)
D-cat// 아쉽죠. 그래도 한 번 더 볼까 합니다. (그러고보니 오늘 뵙겠네요.)
비공개// 그러게요.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 봐줘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