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동, 화상(華商)의 흔적을 찾아서

서울 중심가에 남아 있는 옛 흔적을 사진으로 돌아보는 기획 시리즈 그 세번째 시간...

1편 - 명동, 그 '혼마치도리(本町通)'의 흔적,
2편 - 을지로, 혹은 코가네마치(黃金町) 에 이어
오늘은 소공동 일대에 남아 있는 화교(華僑)의 흔적을 찾아서 한 번 걸어볼까 합니다.

이하 평어체로 갑니다. 양해를.....



양방언님의 '채운국 이야기' 오프닝 메인테마
(C) 2006 Ryo Kunihiko / Nippon Hoso Kyokai / NHK EnterPrise 21




화교와 관련된 흔적은 아니지만, 발걸음 따라 이야기를 시작해 보면...
우선 원구단부터. 서울시청 광장과 웨스틴조선호텔 사이에 있다.
자금성의 원구단에서 대대로 황제가 즉위식을 올리는 중국의 예법을 참조하여, 고종은 이 곳에서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원구단은 중국의 그것처럼 원형 지붕은 아닌 것이, 확실히 조선조 건축답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대표적인 조선시대 건축물 중 하나인 법주사 팔상전과도 닮은 것 같다.




발걸음은 소공동 지하상가를 지나 중앙우체국 앞에 다다른다.
한국은행 앞 분수대가 오랫만에 물줄기를 시원하게 뿜는다.




잠시 자연의 부름이 와서, 어딘가 공중시설이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려 보니
길 건너에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옛 미스꼬시백화점 건물이다.
변변한 2층 건물도 없었던 일제시대엔 이 백화점 건물은 매우 웅장했으리라 여겨진다.




서양의 영향을 받아 일본화된, 일제시대의 건축양식임이 분명해 보이는 중앙계단의 배치.
조선총독부 청사부터 옛 마산고등학교 본관까지, 이 시기 지어진 건물들은 웅장하고 위엄있어 보이게끔
중앙계단을 이렇게 유럽의 저택처럼 배치해놓은 게 많다. (그런데 일제시대 건축기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옛 서울역 건물은 또 그렇지 않다는 게, 한 가지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점이다.)
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명품관으로 전용되었고, 일반영업은 옆의 신관에서 하고 있다.
명품관은 점원 외에는 손님이 거의 없어 꽤나 썰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울 정도였다.
(거기에서 반바지 차림의 카메라를 비스듬히 걸쳐 메고 화장실 찾는다며 두리번거리는 청년은,
저 언니의 눈에는 필시 시골에서 갓 올라온 촌놈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분수대를 지나 발걸음을 옮긴다.

* 랜디님 조언대로 크롭을 해 봤더니 한결 보기가 낫다.
사진가들은 '색에 대한 정보를 배제하면 사진은 정직한 주제만으로 승부한다' 라고 말한다.





다시 길을 건너와, 우체국 건물 왼쪽 골목으로 파고들면
중화요리 전문 음식점과 함께 중국 서적, 과자, 잡화류를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서 있고.....




거리의 끝자락에는 동양풍 물씬 풍기는, 이렇게 생긴 대문이 하나 보인다.
한성화교소학교 건물이다.




마치 '이 곳이 그 옛날 경성의 일본 상인들에 꿀리지 않는 화교들의 거리였소' 하고 웅변하는 듯 서 있다.




옛날에 저 옆에 중화민국 대사관이 있었기에, 이 근처에는 특히 대만이나 홍콩풍 음식점이 많다.
중화민국 대사관은 중국과 국교수립이 되면서 거의 강탈당하다시피했으나, 지금도 대만대표부 사무소는
이 곳 거리, 한성화교소학교 맞은편에 그대로 남아있다. (가보면 청천백일기가 옥상 지붕에 펄럭거린다.)

이 '딘타이펑'의 주력메뉴 또한 광둥요리인 딤섬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힘을 얻는다.


* 주: 딘타이펑 사진을 분명 촬영했는데 제 메모리에 없네요.(므엉) 아마 같이 갔던 지인의 펜탁스 K10D로 촬영했나 봅니다.;;;;
제 경우, 디지털 SLR의 경우는 제 것이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이것저것 지인들의 기기를 빌려서 돌려가며 찍기에 - 니콘 D70s를 썼다가 캐논 350D를 썼다가 400D에 쩜팔 달고 쓰다가, 펜탁스도 K10d랑 K100d를 왔다갔다하고.... 뭐 그렇습니다.;;;; 나중에 사진 입수되는 대로 수정해두겠습니다. (카카오 아저씨, MSN으로 사진 좀 보내주세요)



단골집 하나. 사진의 '향미'는 비록 건새우 왕만두와 우육탕면, 그리고 오향장육을 잘하는 산동식 요리점.
어라? 상하이나 광둥요리가 아니네? 라고 묻는 분에게.... 그건 아마도 이 집 본점이 연남동이고 이 곳이 분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장이 연남동 본점 주인 동생이던가 아마... 자세한 설명을 보시려면 예전에 썼던 이 포스팅을 참조하세요.
또한 타향에서 부대끼면 같은 화교끼리는 보통 서로 뭉치지 않을까, 지역별로 쪼개지기보다는... 뭐 이런 잡생각;)



뭐 어쨌든, 탕면 한 그릇 먹으면 힘이 우꾼우꾼 나는 기 마아.... 행복하다. (ㅎㅎㅎ)

(그나저나 이 사진 보고 있자니.... 옛날에 한창 사진 막 배우기 시작하던.... 사진 가르쳐주던 기자 아저씨한테
모노포드로 두들겨맞아가면서, "어이 박군, 이게 사진이여?" 라며 머리꼭대기 이발로 깨물리던 그시절...
아, 왜 깨물렸는지 알겠다. 나 진짜 사진 발로 찍고 다녔었구나....;; 뭐 지금도 개발새발인 건 마찬가진가?)





화교소학교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올라오면 모퉁이에 있는
이 곳 '꽁시멘꽌'도 그러한 대만요리 전문점 중의 하나.




대만풍이라면, 상하이처럼 해선요리가 많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사오롱바오(소룡포) 또한 매우 훌륭하다!




* 이 날 취재에 협조해준 Niche. 밥 잘 얻어먹었다! 고맙다! (ㅎㅎ)
같이 오라 한 R곰이 끝내 안 오는 바람에, 두 명이서 먹느라 허리춤이 가쁠 정도였다... (.....)




이 집이 사오롱바오에 자신이 있다는 것은 - 이렇게 카운터에서 바로 만들어내는 걸 보여줌으로서, 알 수 있다.




닭고기탕수육. 건강상의 상태로 많이 먹지 못하다가,
한의원에서 돼지, 닭고기 해금령이 떨어진 직후여서 얼마나 반갑던지!




사오롱바오(소롱포). 피를 살짝 찢으면 스며나오는 국물이 일품이다.
(그런데 사오롱바오와 딤섬의 차이가 뭘까? 둘다 국물나오는 찐만두 계열인디...; 생긴거 다른거 말고)




팔진초면 - 일종의 해물 볶음면.
광둥요리의 특징 중 하나가 이렇게 면을 한 번 식힌 상태에서 볶는다는 것이다.

중화요리의 기본 조리법은 네 가지 - 굽고, 삶거나 찌고, 볶고, 튀기는 것.
그리고 그 네 가지가 다시 네 가지씩 세분화되어, 기본 조리법만 열 여섯 가지라고 한다.





이식위천(以食爲天) - 중국인들은 '먹는 것으로서 하늘을 삼는다'라고 할 만큼 먹거리를 중시한다.
(시쳇말로는 네발 달린 건 책상, 하늘 나는 건 비행기, 물에 있는 건 잠수함빼고 다 먹는다, 라는 표현도 있지만...)
실제로 홍콩 등지에 파견가 있는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들은 딱히 주식이라는 게 없이
길거리에서 파는 각종 중화요리 그것이 바로 밥이라고 할 정도로 먹거리 문화가 발달해 있다고 한다.
(물론 파 들어간 빵이라든가, 밥 같은 흔히 말하는 의미의 주식도 있대지만...)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식문화는 지금 바다 건너 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켠에서 당당히 위용을 뽐내고 있다.




소공동, 그리고 북창동. 이 곳은 원래 화교들의 거리였다.


다른 나라, 특히 동남아 지역의 화교들이 번영을 누린 것과 달리, 이 나라에서 화교의 운명은 수난 그 자체였다. 지난 게시물들에서 썼듯, 명동지역은 남대문시장통의 조선 영세상인들과 화교 상인들, 그리고 일본 상인들의 상권이 만나는 지역이었고, 특히 중국인들은 구한말부터 이 지역에 아예 뿌리를 일찌감치 내리고 살고 있었다.

앞서 한 포스팅에서 언급한 적 있는 바, 일제는 자신들의 본거지인 혼마치도리 - 명동 동쪽 - 와 공공기관이 있는 서울 중심부를 잇기 위하여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에서 바로 연결되는 도로를 개설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소공로, 당시의 하세가와마치(長谷川町)였다. 조선은행 건물과 하세가와마치는 당시 화교 거주지역 북쪽을 정확하게 반으로 토막내어버렸다.

화교들은 조선신궁(남산신사, 현 남산식물원과 백범광장 자리) 바로 아래쪽 회현방부터 산허리를 타고 내려와 남대문시장, 그리고 남창동과 현재의 프라자호텔 앞까지를 자신들의 본거지로 삼고 있었다. 북창동과 남창동을 가르는 하세가와마치의 개설로 인하여 교통이 편해지고 화교상권의 접근성도 덩달아 올라갔을지는 모르나, 현 서울시청 광장 이북으로 화교상권이 확장되는 것은 이로서 확실히 저지되었고 아마 이것이 일제 당국의 의중이었을 것이다.


북창동 거리에 널린 게 <미인 크럽>이라지만, 이 뿐만 아니라 가끔 중국 요리 식자재, 혹은 알 수 없는 잡다한 물건들을 갖다가 파는 화교상점이 이 거리에 드문드문 박혀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세월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북창동에 있던 화교 상가들이 모조리 사라진 것은 70년대 초의 일이었다.

이 재개발의 시초는 1966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존슨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방문하였을 때
미국 언론들은 그것을 세계로 생중계하였고, 반 시간 남짓하는 환영행사를 중계하는 동안
원경으로 잡은 서울 풍경, 그 중에서도 꾀죄죄한 화교촌이 그대로 전파를 탔던 것이다.
이에 재미교포들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 앞으로 청와대에다 슬럼을 재정비해달라는 탄원서를
넣었다는 기록이 남아있긴 한데, 이것이 재개발의 단초가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다.




(Photo by 소녀별 2006.5.11)



어쨌든 1970년 당시 화교촌은 일제시대에 비해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태평로 일대를 재개발하기 위하여 정부가 조사를 해 보니, 무교동 일대의 토지소유권은 한화그룹 창업자인 故 김종희씨(지금 한창 말많은 김승연 회장의 아버지...)와 故 남궁연씨(우리가 잘 아는 윤보선 외손자, 드러머이자 뮤지션인 빡빡머리 그사람 아님. 대한해운의 창업자.)의 소유였고, 시청 남부 북창동 일부의 건물과 땅이 여전히 화교들의 것으로 남아있었다. 재개발에 걸림돌이 걸린 서울시측에서는 양택식 당시 서울시장의 담화를 통해 이 일대의 화교 소유의 토지를 정리하여 지상 18층 규모의 화교회관을 지어주겠다는 발표를 했고, 화교들은 이를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하여 받아들였다. 이리하여 1971년말부터 시청 광장 앞의 화교상가는 철거되었고, 재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Photo by 소녀별 2006.5.11)



그러나 앞서 말했듯 무교지구의 실질적 양대 주주는 김종희와 남궁연이었는데, 특히 남궁연은 화교회관의 건립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왜 화교회관을 굳이 지어 중국인들만 따로 모으느냐, 화교 상권을 구분하지 말고 대형 건물에 한국인과 중국인이 함께 입주케 하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서울시의 재개발사업은 1972년 중반까지 거의 1년 가까이 중단되었고, 서울시측의 화교회관 건립 약속을 믿고 철거작업에 순순히 응했던 화교 상인들은 울화통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 때를 틈타 한화측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화상(華商:중국 상인들) 대표와 접촉하여 그들이 상정한 조건을 제시했다. 그것은 평당 감정가 최고액인 107만원에 소공동 일대의 화교 소유 토지를 모두 사들이겠다는 조건이었다. (왕십리나 청량리 땅값이 평당 2만~3만원 하던 시절이었다.) 상점이 철거되어 당분간 생계 수단이 막막했던 화교 상인들은 한화측의 제안에 귀가 솔깃했다. 마치 그것은 영화 '대부'에 나오는 그 유명한 대사, "내 당신들에게 한 가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와 버금가는 무게감이었을 것이다. (.....)

그리하여 화상들은 모든 땅을 한화측에 팔았다. 이 때 한화측은 "계약금? 중도금? 그게 뭐냐?" 라는 매우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였는데 - 그들은 한꺼번에 현금박치기로 땅값을 치렀던 것이다. (...............)


(Photo by 소녀별 2006.5.11)

그렇게 하여 지어진 건물이, 바로 지금의 시청 앞 서울프라자호텔이다.




- 이 내용을 회고한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한다.

"나는 지금도 화교회관 건립 무산, 화교 상가집단 분산 및 축출은 무언가 잘 짜여진 한 편의 각본에 따라 이뤄진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재개발 계획 수립, 화교회관 건립 약속, 양택식 시장의 발표까지는 확실히 각본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서울시에서 일했던 내가 잘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화교회관 건립 부지 바로 옆에 '육군 보안사령부 서울분실'이 있었던 사실이 지금까지 내 마음에 걸린다. 화교회관 건립이 발표될 때 보안사령관은 김재규였다. 보안사의 정보 수집력, 김종희씨의 경제력, 남궁연씨의 처세술 등을 모으면 (그러한 공작을)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지금도 떨쳐낼 수 없다."



진실은 저 너머에.


어쨌든, 그리하여 결국 1972년 말까지 소공동의 화교 상인들은 대부분 그 곳을 떠났다.
그것은 아마 박정희 시절의 화교 탄압정책과도 연관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일부는 서대문 밖 연남동으로, 일부는 대만이나 일본으로. 일부는 한국사회에 녹아들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 이상으로, 명동을 중심으로 한 20세기의 조선, 일본, 그리고 중국 세 나라 사람들의 생활과 공간사에 대한 얘기를 대충 정리했습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특히 화교 관련 얘기는 쓸 게 그다지 없었기 때문에....;;



여담.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 동아리에 한 기수 밑으로 희한한 이름을 가진 애들이 몇 명 들어왔습니다. 알고 보니 (대만대표부 대사 아들을 비롯해서) 화교들이 대거 우리 학교에 입학을 했고, 걔들이 몽땅 우리 동아리로 들어온 것이더군요. 사정을 듣고보니 그 특이한 이름은 확실히 중국 느낌이 맞더군요.
그리고.... 나중에 복무를 마치고 복학해서 찾아간 동아리방. 들어가보니까 그 화교 후배중에 한 명이 멀뚱하게 있습니다.

"와, 가태야 오랫만이다"
- 묵묵부답. 멀뚱멀뚱.
"임마, 내다. 니는 뭐 2년 내얼굴 안봤다고 얼굴 까묵나?"
- 여전히 멀뚱멀뚱.
"저... 누구세요?"

"장난치지마 임마... 내다..."

그때 동아리방 문이 벌컥 열리면서 들어오는 한 사람.
"어, 안녕하세요 형. 오랫만이시네요. 복학하셨어요?"

"....허걱! 가태가 둘이다"
"아, 얘는요, 제 동생이에요. 가안이라고 해요. 인사해라. 선배시다."
".... 그런거였냐!"

- 알고보니 형제가 사이좋게 같은 학교 같은 과 같은 동아리에 입학한 것이었습니다. (......)
제가 복무중일 때 들어온 학번이니 알래야 알 수가 없었던거죠. (므엉)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anon EOS400D, F2.8 18-55mm, F/2.8~16, AUTO, ISO/200
Pentax K100D, 번들, F/4, 1/6~1/8sec, etc. ISO/200
Yashica Electro35 GS, Yashinon Color DX 45mm, F 16, AUTO, Kodak Portra 160vc
기타 Nikon D50, Tamron / Pentax K10D / Fuji FinePix S602, etc.
except: Olympus S300D, F5.2, 1/30sec, etc. ISO/160, etc (photo by 소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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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렛 | 2007/06/11 13:04 | 스케치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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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銀鳥-_- at 2007/06/11 13:09
맛있어보이는 것도 많습니다 참(...).
건 그렇고 한화... 참 대인배스럽군요, 돈문제에만 -_-;;;; 한화가 한국화약의 약자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Commented by 스칼렛 at 2007/06/11 13:16
한국화약이 한화로 바뀐 게, 군수업체(말 그대로 화약 ㄱ-)이자 화학공업체인데 이걸 영어로 번역해놓으니까 서양인들이 꼭 무슨 테러집단같은 뉘앙스로 받아들였댑니다; 그래서 그냥 HANHWA로 바꿨다는군요.
Commented by 三慶 at 2007/06/11 13:53
한화는 역시 강합니다 ㄷㄷ 그나저나 참 소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Dataman at 2007/06/11 14:31
신세계백화점, 구 미쯔코시 경성점은 당시 일본에도 없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던가요. 지금 그 건물에 에스컬레이터 흔적이 없는 것을 봐서는 화신에 관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한화의 구 영문 명칭이 Korea Explosives Group이었죠. 그야말로 ㄷㄷㄷ.
Commented by 리칼 at 2007/06/11 23:16
중화요리전문거리..(...)는 꼭 가봐야 하는데 @@/ 말이에요... 엉엉;
Commented by 스칼렛 at 2007/06/12 01:44
三慶// 정말 강하죠(.....) 현금박치기라니 ㄷㄷㄷ
Dataman// 화신백화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정확한 영문명칭이 그거였군요. 듣고보니 더 ㄷㄷㄷ [....]
리칼// 가세요~
Commented by 로무 at 2007/06/13 20:53
좋은 글이었습니다^^/
Commented by eyecent at 2007/06/14 04:04
그런 이유로 내가 현금을 좋아해..
Commented by Earthy at 2007/10/19 13:36
Korea Explosives Group 이라니... 저라도 당장 바꿀 것 같군요.
역시 재미있었습니다.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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