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쩌면 역사의 한 순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천구백구십칠년 깊어가던 어느 가을 밤에
나는 MBC 뉴우스 데스크 이 인용 앵커의 일성(一聲)을 듣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나라가 망한 날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귀를 의심했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나는 어렸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였는지, 나를 둘러싼 세상이
갑자기 격류로 흘러간다고 느끼던 것은 -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실제로 일어나는 걸 보며
다른 하늘이 열린다는 희망에 부풀고
새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도 해 보았건만

그러나 새로운 세상이
반드시 좋은 세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그 때는 미처 몰랐었습니다

그리고 꼭 십여 년이 지나
나는 다시 혼란하외다

세종로 너른 마당에
오늘도 사람이 무리지어 어울고 울며
나랏녹 먹는 사람들은 열심히 떠들고
펜을 쥔 사람들은 가타부타를 시끄럽게 떠드는데

그 와중에도 알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어서
십여 년이 흐른 지금의 나는 여전히 힘이 없습니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지조차 못합니다

언제 나랏님 말을 믿어서
좋은 누리 난 게 있었느냐라고
어르신들의 지혜가 말을 하는데, 그러나
짝패로 갈린 문사(文士)들의 외침과 누리꾼의 훤화도
이제 나는 못 믿겠습니다
내가 누구를 믿으랴, 오직 모를 뿐...

단지 내가 지금
후세의 사람들이 역사책에 써놓는
그 한 순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짐작할 뿐입니다

그저 짐작할 뿐입니다.

by 스칼렛 | 2007/04/02 12:19 | 단상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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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카방글 at 2007/04/02 13:21
노무현은 역사 앞에 책임지는 일만 남았군요. 다만, 우리들을 위해서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Commented by spam at 2007/04/02 15:31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6`25 동란 때 얘기도 가끔 가다 하셔요'ㅅ'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자신을 지키면서 끝까지 살아나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안정숙 at 2007/04/03 08:46
우리들은 언제가 관의 권력앞에 무기력한 시민들 일뿐 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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