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2월 28일
은행 지로납부 자동화의 문제
어저께 업무시간 마감으로 인해 처리하지 못했던 예비군편제 신고를 마저 하러 예비군 동대에 들리고, 그 겸사겸사로 은행에 공과금을 내러 갔다 왔습니다. 제 경우 보통 공과금을 낼 때는 학내 우체국에 가서 지로로 납부하는 형식입니다만 오늘은 동네에 있는 W은행에 갔었죠. W은행 뿐만 아니라 최근 시중은행들이 다 그런데, 요즘은 지로도 자동납부라고 해서 영수증을 봉투에 붙여 기계에 집어넣고 입력하면 자기 구좌에서 해당 금액이 인출되는 방식입니다.
자동화기기를 사용하면 은행의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고 하여간 뭔가 cost가 절약된다고들 그럽니다. 확실히 입출금, 특히 돈 찾는 거는 기계 쪽이 빠르고 편하게 찾을 수 있겠죠. 몇만원 찾는다고 대기시간 길게 늘여서 기다리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런데, ATM기기는 몰라도 지로용지 납부 문제, 이건 좀 아니다 싶습니다. 몇 가지 문제를 당장 지적할 수 있겠지만 가장 큰 맥락은 은행업무의 능률성 문제가 고객의 편의보다도 더 우선된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생각해보면 공과금 납부시 편리함을 추구하는 고객 계층은 굳이 지로용지를 털래털래 들고 은행까지 오지 않을 듯합니다. 즉 이런 '얼리어답터' 고객들은 공과금 자동이체는 기본이고, 세제혜택을 위해 아예 신용카드로 납부해버리기도 하는 게 일반적인 경향이 아닐까 싶다는 거죠. 다시 말해 지로용지를 매번 은행까지 들고 오는 사람이라 하면, 이들은 대부분 기계에 익숙치 않거나 혹은 사정에 의해 사용할 수 없는 계층이란 얘깁니다. 실제로 오늘 은행에서 납부기계에 줄서서 봉투 붙이는 사람들 보니까 거의 대다수가 노인분들이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라면 1분만에 척척척 버튼 눌러서 입력하고 끝낼 일을, 떨리는 손으로 꿈지럭꿈지럭 하니 오히려 대기시간은 길어지고 능률은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은행측에서는 이제 기계가 생겼다고 창구에서는 지로용지 공과금수납을 받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계좌 자동이체나 다를 바 없어지게 되는 셈인데, 여기서 또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이제는 지로 납부도 자신의 주거래은행에서만 해야 한다는 제약이 생기는 거죠. 실제로 저는 C은행의 경우 계좌가 없다는 이유로 납부를 거부당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S협동조합에서는 이번 한 번만 해드립니다- 라며 받아주더군요.
지로(giro) 제도라 함은 은행의 예금계좌를 통해 수취인과 지급인이 서로 접촉하지 않아도 중앙집중처리센터를 통하여 자금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7년 2월에 전기요금이 최초로 이 방식을 도입했는데, 사실 은행에 요금을 대납하는 제도 자체는 1960년대까지 거슬러올라갑니다. 이런 제도가 생긴 이유는 다들 아시다시피 국가시스템이 주체가 되어 어느 금융기관의 어느 지점에다가 돈을 갖다넣어도 알아서 취합해준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리고 수금원의 중간착취나 혹은 사칭 등의 문제(옛날에는 이런 범죄가 많았죠)도 방지할 수 있었고. 그런데 이제 지로제도가 사실상 자신의 거래은행에서만 가능하다는 제약이 생겼으니 대한민국 금융기능의 개념은 오프라인 측면만 따지면 1977년 이전으로 퇴행해버린 셈입니다.
한 가지 더 사족을 달자면 - 개인적인 감상이겠습니다만 기계에다가 봉투를 집어넣고 있자니 이게 제대로 납부가 처리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나 금융사고가 생기면 어떡하나 싶고... 한 마디로 못 미더운데다가 더해서 현실감이 제로더란 소립니다. 은행에 사람은 바글거리는데 고객과 은행간의 인간미는 영 없어진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학교 우체국이나, 아니면 가끔 서소문에 있는 K은행 서울지점까지 일부러 찾아가기도 합니다. 업무처리를 하면서 무표정이 아니라 "경남 분인가 보죠?"라고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여직원을 보는 건 드물기도 하거니와 고향 얘기로 두런거리다 보면 상당히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그리고 용지에다가 도장을 쿵쿵 쿵 찍어주는 그 소리만큼 확실하고 든든한 것도 없겠습니다.
업무처리의 자동화는 고객과 은행이 둘 다 편하자고 하는 것이고 저 또한 인터넷 뱅킹이나 자동화기기를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지로용지 문제 같은 것은 은행(즉 시스템)이 마땅히 취해야 할 "약자(비적응자)"에 대한 보호의무를 게을리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시대에 뒤처진 자의 볼멘소리라기보다는, 어쩌면 사회구조상에서 소외되는 소수에 대한 우리 다수의 배려라는 마인드로 접근해야 될 문제가 아닐까요?
자동화기기를 사용하면 은행의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고 하여간 뭔가 cost가 절약된다고들 그럽니다. 확실히 입출금, 특히 돈 찾는 거는 기계 쪽이 빠르고 편하게 찾을 수 있겠죠. 몇만원 찾는다고 대기시간 길게 늘여서 기다리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런데, ATM기기는 몰라도 지로용지 납부 문제, 이건 좀 아니다 싶습니다. 몇 가지 문제를 당장 지적할 수 있겠지만 가장 큰 맥락은 은행업무의 능률성 문제가 고객의 편의보다도 더 우선된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생각해보면 공과금 납부시 편리함을 추구하는 고객 계층은 굳이 지로용지를 털래털래 들고 은행까지 오지 않을 듯합니다. 즉 이런 '얼리어답터' 고객들은 공과금 자동이체는 기본이고, 세제혜택을 위해 아예 신용카드로 납부해버리기도 하는 게 일반적인 경향이 아닐까 싶다는 거죠. 다시 말해 지로용지를 매번 은행까지 들고 오는 사람이라 하면, 이들은 대부분 기계에 익숙치 않거나 혹은 사정에 의해 사용할 수 없는 계층이란 얘깁니다. 실제로 오늘 은행에서 납부기계에 줄서서 봉투 붙이는 사람들 보니까 거의 대다수가 노인분들이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라면 1분만에 척척척 버튼 눌러서 입력하고 끝낼 일을, 떨리는 손으로 꿈지럭꿈지럭 하니 오히려 대기시간은 길어지고 능률은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은행측에서는 이제 기계가 생겼다고 창구에서는 지로용지 공과금수납을 받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계좌 자동이체나 다를 바 없어지게 되는 셈인데, 여기서 또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이제는 지로 납부도 자신의 주거래은행에서만 해야 한다는 제약이 생기는 거죠. 실제로 저는 C은행의 경우 계좌가 없다는 이유로 납부를 거부당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S협동조합에서는 이번 한 번만 해드립니다- 라며 받아주더군요.
지로(giro) 제도라 함은 은행의 예금계좌를 통해 수취인과 지급인이 서로 접촉하지 않아도 중앙집중처리센터를 통하여 자금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7년 2월에 전기요금이 최초로 이 방식을 도입했는데, 사실 은행에 요금을 대납하는 제도 자체는 1960년대까지 거슬러올라갑니다. 이런 제도가 생긴 이유는 다들 아시다시피 국가시스템이 주체가 되어 어느 금융기관의 어느 지점에다가 돈을 갖다넣어도 알아서 취합해준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리고 수금원의 중간착취나 혹은 사칭 등의 문제(옛날에는 이런 범죄가 많았죠)도 방지할 수 있었고. 그런데 이제 지로제도가 사실상 자신의 거래은행에서만 가능하다는 제약이 생겼으니 대한민국 금융기능의 개념은 오프라인 측면만 따지면 1977년 이전으로 퇴행해버린 셈입니다.
한 가지 더 사족을 달자면 - 개인적인 감상이겠습니다만 기계에다가 봉투를 집어넣고 있자니 이게 제대로 납부가 처리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나 금융사고가 생기면 어떡하나 싶고... 한 마디로 못 미더운데다가 더해서 현실감이 제로더란 소립니다. 은행에 사람은 바글거리는데 고객과 은행간의 인간미는 영 없어진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학교 우체국이나, 아니면 가끔 서소문에 있는 K은행 서울지점까지 일부러 찾아가기도 합니다. 업무처리를 하면서 무표정이 아니라 "경남 분인가 보죠?"라고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여직원을 보는 건 드물기도 하거니와 고향 얘기로 두런거리다 보면 상당히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그리고 용지에다가 도장을 쿵쿵 쿵 찍어주는 그 소리만큼 확실하고 든든한 것도 없겠습니다.
업무처리의 자동화는 고객과 은행이 둘 다 편하자고 하는 것이고 저 또한 인터넷 뱅킹이나 자동화기기를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지로용지 문제 같은 것은 은행(즉 시스템)이 마땅히 취해야 할 "약자(비적응자)"에 대한 보호의무를 게을리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시대에 뒤처진 자의 볼멘소리라기보다는, 어쩌면 사회구조상에서 소외되는 소수에 대한 우리 다수의 배려라는 마인드로 접근해야 될 문제가 아닐까요?
# by | 2006/02/28 18:01 | 단상 | 트랙백(2) | 덧글(2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2006년 3월 2일 이오공감
재이있게 오래도록 사진찍기 by Skadi혼자 배우고, 혼자 찍고, 혼자 보고, 혼자 기억을 챙겨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미 프로들이 터득하고 지나간 것들을 뒤늦게 깨닫고 좋아라 하기도 하고 가끔은 실망을 하기도...모닝커피를 아시나요? by 遊異모닝커피는 다른 뜻도 있습니다. 아니, 다른 뜻이라기 보다는 원래 다른 것을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하더군요.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은행 지로납부 자동화의 문제 by ◆박군어저께 업무시간 마감으로 인해 처리하지 못했던 예비군편제 신고를 마저 하러 예비군 동대에 들리고, ......more
제목 : 조금 다른 이야기
은행 지로납부 자동화의 문제 지로납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전 "자동납부"를 신용하지 않습니다. 흔히 신용카드로 xx를 납부하시면 x%를 할인해 드립니다는 둥 지로용지만들 돈을 아껴 나무를 살릴 수 있다는 둥 자동납부를 하시면 은행에서 기다릴 필요없이 간편하게 납부하실 수 있다는 둥. 전 이것 몽땅 신용하지 않습니다......more
지금은 은행 창구직원들도 대다수가 파트타이머인 시대. 앞으로도 인건비 절약을 위한 발악은 계속되겠지. 실제로 10퍼센트가 안 되는 고객이 은행 이익의 80%를 벌어다주는게 현실이다보니-_- 각 지점 내에서도 직급이 과장쯤만 되어도 사실 서민금융쪽은 거의 신경을 안쓰고 돈 있는 사람들 예금 따내고 기업들이랑 대출상담한다고 바빠(......)
시스템 자체가 현금소지는 안하는 구조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지만 캐나다에 있을 때 그동네 은행을 이용해 봤는데 참 각박하더라. 아마 예금이 상시 수천달러 이상이 안 되어 있으면 월마다 이용료 몇달러씩 떼고, 한달에 제한된 창구이용횟수나 ATM기기 이용횟수를 넘어도 이용료 떼고, 계좌를 개설해도 마찬가지로 예금이 어느정도 있거나 따로 돈을 내는 게 아니면 [통장]을 안주고 현금카드만 주더라-_-
음. 뭐랄까. 옛날에는 은행원이 준 공무원위치쯤 되는 개념도 상당히 강했는데 이게 IMF이후 완전히 민간화로 돌아서면서 생긴 현상이랄까. 그런 연장선에서 봐야 할 것 같아.
Catena// 뭔가 이상해지고 있어요...
마나// 그런데 그런 cost-down과 social security의 문제는 양립해야지 한쪽이 한쪽을 갉아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닐까? IT쪽에 계신 양반들 얘기 들어보니까 오히려 저런 기계 유지비가 인건비보다 더 드는 모양이던데-_-;
areaz// 지로도 아마 안 하려고 하다가 금감원에서 도끼눈 후라려서 지금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걸로 압니다.
블랙베어// -_-
그리고 마지막에 지로자동납부시스템이 약자(비적응자)에 대한 배려를 게을리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로서는 인터넷뱅킹쪽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의 이용을 권장하려 할 때, 그 불편에 상응하는 당근의 유무가 관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도 인터넷뱅킹은 잘 이용하고 지로납부기기는 버벅거리며 딱 두번 이용한 사람이라서.. 말이 많았네요. 지로납부기기 왠지 너무 어렵다구요 >ㅁ<;;)
이오공감 축하드립니다.
오거// 큰 우체국에는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학내우체국은 지하 점포라.. 뭐 있으면 편하긴 하죠.
에치쓰// 확실히 그렇습니다.
비야옹// 특히 '봉투'는 진짜 뭔가 본말전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인 건, 제가 노인분들과 유독 많은 인연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병역 복무를 어르신 컴퓨터 교실에서 강사로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반 사람들이 안 보이는 게 좀 보이더라구요.
오유// 뭔가 효율을 가장한 비효율같아서 좀 그렇더군요.
어둠의눈// 어 감사-_-)/
달님// 바로 그런 문제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잘 정리해 주셨군요...
akachan// 한 서너번 가니까 저는 이제 좀 익숙해지는데 옆에서는 여전히 어르신들 손끝을 벌벌 떨고 계십니다...
오프 라인을 더 선호하는 이유는 일단 확실하게 내가 공과금을 냈다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자동이체는 까딱 잘못하면 연체되는 일도 있을 수 있고 말이죠.
소울이// 땡큐-_-)/
어리작의// 다른 게시판에 썼더니 아마 은행권에 계신가 본데 '은행도 땅파먹고 장사하는 건 아닙니다'라는 논지를 개진하는 분이 계시더군요. 일리는 있긴 한데, 서비스의 펀더멘털 마인드에 대한 제 주관이 있는지라 여전히 동의는 힘들었습니다.
로리// 새마을금고는 받아주나요? 그러고보니 거기는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이 없네요..
bikbloger// 좀 딴데로 새는 소리입니다만 그 K은행, 마산 월영지점에는 청원경찰이 '언니야'더군요(...) 제복에 홀스터를 차고 있던데 경찰학교는 졸업했나 모르겠습니다.;;;